최근 기업과 연구원 등이 국가 연구개발(R&D) 자금을 ‘눈먼 돈’ 취급하며 유용·횡령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제보 보상금을 10배로 올리고 지원을 받는 모든 기업의 R&D 자금 사용 내역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다.
연구비 횡령·유용 신고보상 1억→10억 확대
○정부가 직접 자금관리

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 ‘산업 R&D 자금 부정 사용 방지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2011년 89억원 수준이던 R&D 부정 사용이 2012년 86억원, 지난해 120억원 등으로 늘고 있는 데다 방식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정부는 우선 R&D 자금의 유용 사실을 신고할 때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을 현행 최대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은행 카드사 국세청 전산망과 연계해 연구비를 실시간으로 지급·관리하는 시스템(RCMS)을 R&D 기업과 연구소 등에 전면 적용하기로 했다. 이 시스템은 R&D 지원비를 직접 기업 통장에 넣어주지 않고 정부가 대신 비용 처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이 RCMS를 이용해 R&D에 필요한 장비를 살 경우 전자계산서가 자동으로 정부기관에 발급되는 방식이다.

○정부 지원금=‘눈먼 돈’ 팽배

정부가 이처럼 국가 R&D 자금 유용 근절에 나선 것은 그만큼 일부 기업과 연구원의 비용 횡령·유용행태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지원금은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라는 식의 인식이 팽배한 실정이다.

의도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R&D 자금을 유용한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사례가 대표적이다. NIPA 직원 김씨 등은 사물인터넷 관련 사업을 E사 등 특정 업체에 몰아준 뒤 사례금 명목으로 총 15억4000만원의 뇌물을 챙겼다. 연구과제 사업을 따낸 E사는 페이퍼컴퍼니에 하도급을 주는 것처럼 꾸며 정부 자금을 유용하고, 김씨는 E사에 허위계약서와 세금계산서까지 떼줬다가 이달 초 검찰에 적발됐다.

‘허위 영수증’을 만들어 제출하는 일도 빈번하다. N사는 2008년부터 보유하고 있던 기존 장비를 2011년 정부로부터 받은 R&D 자금으로 구매한 것처럼 허위서류를 꾸며 29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R&D 비용을 단순 인건비로 사용한 경우도 많다. 2011년 22억원의 R&D 비용을 지급받은 M사는 이 돈을 인건비와 사무실 임차료, 이자비용 등으로 충당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비판도

그간 국가 R&D 비용 횡령 금액이 갈수록 늘어난 것은 정부의 관리·감독이 소홀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산업부 관계자는 “최근까지 R&D 자금 집행에 대해 회계상 숫자가 틀리지 않는지 정도의 단순한 점검만 했다”며 “사업비 부정사용을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근 4년간 유용된 국가 R&D 비용은 530억원. 이렇게 많은 돈이 엉터리로 집행된 뒤에야 부랴부랴 사후 대책을 내놓는 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세종=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