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전쟁, 中企의 반격] 서울반도체 "공격이 최선의 방어"…북미 가전社에 LED 특허 소송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외국기업과의 특허소송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기술력에서 그만큼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만나보면 ‘해외 대기업과 싸워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영진이 적지 않다.

“특허소송 더 이상 당하지 않아”

서울반도체는 2009년 끝난 일본 기업 니치아와의 소송에서 특허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LED(발광다이오드) 후발주자인 서울반도체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본격적인 견제에 나선 것이다. 이정훈 서울반도체 사장은 “결과적으로 특허를 공유하기로 마무리했지만 3년에 걸친 소송전에 지칠 대로 지쳤고 이대론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당시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면서 올해 4월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장에 취임했다. 회사 일 외에 외부 활동을 전혀 하지 않던 이 사장이 갖고 있는 유일한 사외 명함이다. 그는 “앞으로 두고 보라”며 “아무리 큰 공룡기업이라 하더라도 우리 특허를 침해하거나 말도 안되는 특허무효 소송을 제기하면 강경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서울반도체는 북미가전업체 2곳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제기했고, 중국 LED 조명업체의 특허침해 여부를 조사 중이다.

서울반도체처럼 외국기업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는 국내 중견·중소기업이 해마다 늘고 있다. 예컨대 미국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분쟁은 2009년 2326건에서 2011년 3628건, 지난해엔 6092건으로 급증했다. 최근 2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외국 공룡기업과 당당히 맞서

물론 아직까지는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이 특허소송을 당하는 사례가 더 많다. 국내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외국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중소기업을 상대로 경고장을 하도 보내니까 경각심을 갖기보다 우리끼리는 ‘러브레터가 또 왔다’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그만큼 경고장을 남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허청 산업재산보호정책과 관계자는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 특허 분쟁 가운데 90% 이상이 소송을 당하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특허소송을 당한 국내 중견·중소기업의 대응방식은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외국의 기술을 일방적으로 베끼던 과거와 달리 자체적으로 개발한 특허 기술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고데기(머리 손질하는 기구)부품 제조업체 A사는 영국 고데기 회사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영국의 부품제조 대기업 B사로부터 ‘특허 침해’ 경고장을 여섯 차례나 받았다. 고객사를 빼앗긴 데 대한 분풀이였다.

특허분쟁 해결에 관한 지식이 없었던 A사는 한국지식재산협회의 도움(국제지식재산권분쟁예방컨설팅)을 받아 ‘B사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허침해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특허 소유권자에게 있는데, 19건의 특허에 대해 이미 침해했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경고장을 보내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맞섰다. 특허침해 싸움이 길어지면서 모든 연구원이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A사는 B사와 만나 담판을 했다. B사 자존심을 세워주는 차원의 아주 적은 금액의 로열티만 주고 ‘서로 갖고 있는 기술을 공유’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덕분에 큰 소송비용을 쓰지 않고 10년 동안 세계시장에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국내업체끼리도 특허싸움 치열

청호나이스, 코웨이와 얼음정수기 싸움
듀오백, 퍼시스에 의자 특허소송 1승


국내에서는 후발주자가 선두업체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잦아졌다. 생활가전 렌털업계 2위인 청호나이스는 지난 4월 1위 기업 코웨이를 상대로 서울지방법원에 특허침해 소송을 냈다. 코웨이가 자사 얼음정수기의 특허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매출이 3000억원대인 회사가 2조원대 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건 것이다. 이석호 청호나이스 사장은 “특허 소유권을 확실히 해둬야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자브랜드 ‘듀오백’을 만드는 디비케이는 사무가구 1위 기업인 퍼시스의 의자 브랜드 ‘시디즈’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 소송 1심에서 최근 이겼다. 시디즈의 대표 제품 ‘미또’에 들어간 회전·고정 선택 기능이 디비케이의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디비케이는 2012년에도 시디즈의 의자 ‘링고’가 듀얼린더 특허 기술을 베꼈다고 소송을 제기, 작년 9월 승소한 바 있다. 디비케이 관계자는 “다섯 차례 넘게 퍼시스를 찾아가 협상을 요구했으나 결렬돼 소송전을 치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270개社 최대 2800만원씩 특허 컨설팅 지원

국내 기업의 해외 특허소송이 급증하면서 정부의 분쟁 전문 컨설팅을 받으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한국지식재산보호협회는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아 2009년부터 ‘국제지식재산권분쟁예방컨설팅’ 프로그램을 운영, 특허 소송에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중견·중소기업을 돕고 있다. 20011년엔 72개, 2012년엔 110개 기업의 소송을 도왔다. 지난해엔 128개 기업을 지원했고 올해는 270개 기업을 도울 계획이다. 협회의 컨설팅 프로그램은 3개월 동안 한 기업에 최대 2800만원을 지원해 변호사 변리사 등 분쟁전문가로부터 도움을 받게 해준다.

민지혜/안재광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