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제윤 “기술금융 대출실적, 임직원 성과에 반영할 것” > 신제윤 금융위원장(오른쪽 세 번째)이 5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시중은행 임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에 대한 대출 실적을 임직원 성과평가에 반영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 신제윤 “기술금융 대출실적, 임직원 성과에 반영할 것” > 신제윤 금융위원장(오른쪽 세 번째)이 5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시중은행 임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에 대한 대출 실적을 임직원 성과평가에 반영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기업이 어려울 때마다 회생 가능성에 대한 고려 없이 은행들에 지원하게 해놓고, 나중에 부실이 생기면 담당 임직원들을 제재하는 감독당국의 관행이야말로 보신주의 아닙니까.”(A은행 부행장)

은행들이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5일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에서 마련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및 리스크관리담당 임원과의 간담회 자리에서다. 은행 임원들은 사후에 은행은 물론 임직원 개인을 제재하는 것이 이른바 ‘금융권 보신주의’를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급할 때는 무조건 기업을 지원하라고 해놓고, 나중에 책임을 개인에게 묻는 감독당국의 관행이 지속되다 보니 몸을 잔뜩 움츠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압박→지원→부실→징계’ 악순환

은행들 "부실기업 지원하라더니, 징계…정부 保身주의가 문제"
이날 열린 간담회에선 금융사들의 기존 대출 관행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부실 대출에 대한 금융당국의 사후 제재 등에 불만이 집중 제기됐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기업 여신 관련 부실이 생겼을 때 직원 개인에 대한 제재는 은행에 맡겨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며 “감독당국은 은행의 경영실태 평가를 통해 기관 제재를 내리는 게 맞다는 데 참석자 상당수가 동의했다”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사후에 감독당국이 은행 임직원에 대한 대대적 문책을 내리곤 하는 것에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금융위원회가 강조하고 있는 기술금융 활성화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건의가 나왔다. 구체적으론 은행들이 담보가 적은 기술금융을 활성화하려면 잘못될 경우 모든 책임을 은행이 떠안도록 할 것이 아니라, 돈을 빌리는 기업이나 개인도 일정 부분 책임을 나눠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야만 은행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어 기술금융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건의는 감독당국의 이율배반적 감독 행태에 대한 경험에서 나왔다. 그동안 감독당국은 ‘처음 다르고, 나중 다른 행태’를 여러번 보였다. 건설사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자금 지원 압박이 대표적 사례다. 은행들은 지난해 초 금융당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쌍용건설에 대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갔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워크아웃을 전후해 채권단이 투입한 금액은 70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작년 말 쌍용건설이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채권은 대부분 휴지 조각이 됐다.

정부의 압박으로 기업에 돈을 빌려준 후 부실을 이유로 제재를 받는 경우도 많다. 산업은행은 주채권은행으로서 STX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총대를 멨다가 작년에만 1조4000억원가량의 손실을 냈다. STX에 대한 지원을 독려해온 금융당국은 최근 여신 심사 과정의 책임을 물어 제재를 준비하고 있다.

○오락가락 정책으로 혼선

그동안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금융권의 혼선만 키웠다는 불만도 팽배하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기업 자금 지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은행장을 여신심사위원회에 참여시키려 했다가 ‘없던 일’로 한 게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은행장에게 ‘짐’을 지우게 한 뒤 자신들의 입맛대로 여신 심사 과정을 통제하려는 ‘관치(官治)’의 부활이란 비판이 거세지자 이를 포기한 것이다.

정부가 2012년 주도한 은행권 수수료 인하 및 가산금리 축소도 비슷한 경우다. 당시 금융당국은 금융권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해 은행권의 가산금리와 각종 수수료를 일괄적으로 내리도록 압박했다. 그 결과 지난해 금융사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돼 논란이 일었다. 금융당국은 다시 은행·보험·증권사 등의 수익기반 확충이 필요하다며 ‘수수료 현실화’ 방안을 들고 나왔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주저앉았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내려진 중소기업 대출 만기 일괄 연장 지시도 대표적인 오락가락 정책으로 꼽힌다. 당시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장들을 모아 놓고 중소기업 대출 만기를 무조건 연장하라고 지시했다. 대신 책임은 묻지 않겠다고 문서까지 내줬지만, 경기가 진정되자 약속과 달리 부실 대출 책임자를 징계했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은 “지원하라고 할 때는 언제고 나중에 책임을 지우면 누가 창업·중소기업에 적극적으로 대출을 해주겠느냐”고 꼬집었다.

한 민간연구소 대표는 “기업 지원에 적극적인 은행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유인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창민/박신영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