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처펀드 규탄” > 아르헨티나가 디폴트 상황에 처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한 아르헨티나 시민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조국이냐, 벌처펀드냐. 힘내자 아르헨티나여’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미국 헤지펀드(벌처펀드)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P연합뉴스
< “벌처펀드 규탄” > 아르헨티나가 디폴트 상황에 처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한 아르헨티나 시민이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조국이냐, 벌처펀드냐. 힘내자 아르헨티나여’라는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미국 헤지펀드(벌처펀드)를 규탄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AP연합뉴스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에 빠진 다음날인 7월3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증시는 8.39% 급락했다. 하지만 채권과 외환시장은 잠잠했다. 유럽과 뉴욕증시가 많이 빠지긴 했지만 아르헨티나 문제보다는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과 유럽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더 컸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다른 채권자들의 연쇄 채무상환 요구나 아르헨티나 해외자산에 대한 동결조치도 없었다. 심지어 아르헨티나는 “디폴트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왜 아르헨티나의 디폴트는 통상적인 디폴트와 다른 모습일까.

○디폴트 ‘성립’ 놓고 신경전

국가부도 맞아?…헷갈리는 '아르헨티나 디폴트'
아르헨티나는 지난 7월30일 밤 12시까지 국채에 대한 이자 5억3900만달러를 지급하지 못해 13년 만에 또다시 디폴트에 빠졌다. 뉴욕 법원이 미국 헤지펀드(벌처펀드)들이 제기한 소송을 받아들여 헤지펀드들에 돈을 갚기 전엔 다른 채무자들에게 이자 상환을 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뉴욕 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신용평가사 S&P는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을 ‘선택적 디폴트’로 낮췄고, 이어 피치도 ‘제한적 디폴트’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평가사들이 이번 디폴트를 ‘선택적’ 또는 ‘제한적’이라고 본 것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돈을 갚을 능력은 있으나 법원 판결로 결제를 못하는 상황이라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디폴트의 근거가 된 5억3900만달러의 이자 지급용 자금을 대외결제은행인 뉴욕 멜론은행에 예치했기 때문에 디폴트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호르헤 카피타니치 아르헨티나 대통령실장은 “(디폴트 여부의 적정성을 따지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이자 지급용 자금을 예치했지만 뉴욕 법원의 지급 중지 결정이라는 ‘월권’에 의해 집행을 못했기 때문에 실제 디폴트라는 ‘이벤트’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욕 법원의 결정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대다수다. 뉴욕법이 관할하는 지역에서 발행된 아르헨티나 국채의 상환과 관련한 결정인 만큼 뉴욕 법원의 결정이 국제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아르헨티나여, 도망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비꼬았다.

○국제 금융시장은 관망

이번에 논란이 된 뉴욕법 관할 아르헨티나의 국채 규모는 119억달러다. 이보다 훨씬 많은 165억달러의 채권이 영국에서 발행됐지만 이들 채권을 보유한 기관이나 개인들은 아르헨티나 정부에 상환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들 채권자가 일단 연쇄상환 요구로 혼란을 부추기기보다는 아르헨티나 정부와 채권단의 추가 협상 가능성을 지켜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무디스는 아르헨티나의 신용등급에 대한 추가조정을 하지 않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남미 국가는 통상 디폴트 후 3일간의 추가 유예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오는 4일까지는 사태를 수습할 추가시간이 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힘겨루기는 지금부터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아르헨티나 정부와 헤지펀드 간 협상 타결 △아르헨티나 민간은행들이 헤지펀드가 보유한 아르헨티나 국채를 떠안는 절충안 마련 △채권자 동등대우(RUFO) 조항이 만료되는 연말까지 아르헨티나 정부의 시간 끌기 가운데 하나로 전개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시간을 끌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채권자 동등대우 조항이 끝나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미 채무조정에 응한 채권자들과의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헤지펀드들과 자유로운 상태에서 채무상환 협상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뉴욕=이심기 특파원/김순신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