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별 빈곤율 통계지표를 보면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은 게 있다. 노인 빈곤율이다. 2012년 말 기준으로 48.5%에 달한다. 가장 낮은 네덜란드(1.5%)는 물론 헝가리(5.2%)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높다. OECD 회원국의 전년 평균 10.5%에 비하면 거의 다섯 배나 된다.

흥미로운 점은 만 18~65세 경제활동인구 빈곤율은 미국이나 스웨덴보다도 낮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선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훨씬 가난하다는 이야기다.
[연금이 미래다] 노인빈곤율 한국 49% vs 네덜란드 1.5%…연금이 차이 갈랐다
○연금 없는 노인 “빈곤율 최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물건을 배송하는 택배기사 황구현 씨(69)는 매일 12시간가량 일한다. 그의 한 달 수입은 60만원 정도. 황씨는 “직장생활을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으로 분식집을 열었다가 2년 만에 문을 닫았다”며 “월 40만원씩 나오는 국민연금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황씨와 비슷한 사례는 많다. 한국 남성의 유효 은퇴 연령(실제 퇴직 나이)은 평균 71.1세로, 멕시코(72.3세)에 이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다. 생활을 위해선 늙어서도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공적연금인 국민연금과 다른 사적연금을 합해서 한국의 노령층이 받는 연금은 월평균 42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절대액수가 적고, 퇴직연금은 목돈으로 찾아서 창업자금이나 자녀학자금 등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연금 생활을 하는 노년층은 아주 드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칠레선 분할수령 의무화

영국 칠레 등에선 퇴직연금 가입자의 장기 분할수령을 의무화하고 있다. 퇴직자 자율에 맡길 경우 일시 손해를 보더라도 한 번에 목돈을 받고 싶어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쉽게 ‘비합리적’ 선택을 한다는 점은 과거 통계에서도 입증된다. 미국 국방부가 1992년 실시한 감원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방부는 당시 6만5000여명의 구조조정 대상 장병들에게 퇴직급여를 평생 연금으로 받을 것인지, 아니면 한꺼번에 목돈으로 수령할 것인지 결정하도록 했다.

군인연금을 택하면 수익률이 퇴직적립액 대비 연평균 17.5~19.8%에 달할 것으로 계산됐다. 그런데도 감원 대상 사병의 92%가 일시금을 선호했다. “당장 목돈을 손에 쥐고 싶다”는 심리 때문에 전직 군인들이 총 17억달러를 손해봤다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계산이다.

김경록 미래에셋 은퇴연구소장은 “일정 기간 연금을 받은 다음에만 일시금 인출을 허용하거나 영국처럼 적립금 중 75%만큼은 한 번에 빼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이태호 한국채권연구원 연구위원은 “퇴직연금의 중도인출만 제한해도 현재 85조원 규모인 기금이 2020년까지 200조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연금세 확 낮춰 분할수령 유도

퇴직급여를 매달 연금 방식으로 받도록 유도하는 세제혜택도 부족하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재 일시금으로 찾을 때 내야 하는 퇴직소득세는 적립액이나 근속 연수, 부양가족 수 등에 따라 3~7% 수준이다. 연금소득세(3.3~5.5%)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성인모 금융투자협회 연금지원실장은 “연금 수령기간을 짧게 잡은 퇴직자보다 일시금으로 받는 사람의 세금 혜택이 오히려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호주에서 55세 이전에 퇴직연금을 중도 인출하면 21%의 벌금성 세율을 매기는 이유다.

연금소득세율 자체도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이자·배당소득세(15.4%)와 달리 개인·퇴직연금 인출액 전체에 대해 부과하는 방식이어서다. 예컨대 현행 세법에 따르면 월 100만원씩 연금을 수령하면 매달 3만3000~5만5000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사적연금 합산 수령액이 연간 1200만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세까지 내야 해 세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퇴직연금 컨설팅회사인 머서코리아의 황규만 부사장은 “미국 호주 등 선진국에서 사적연금 지원을 확대해 노년층 부양에 대한 국가재정 부담을 낮춰온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