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 가전 ‘빅3’의 몰락으로 과거 전자왕국으로 불리던 일본의 명성엔 금이 갔다. 그러나 전자부품 분야는 ‘난공불락’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일본 부품업계 6개사(무라타제작소 일본전산 TDK 교세라 알프스전기 닛토덴코)의 수주액을 모두 합치면 1조900억엔(약 11조700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16% 늘어난 금액이다.

사실 완제품 업체가 어려워지자 일본 부품업계도 2012년 힘든 시기를 겪었다. 다이요유덴, 신코 등은 영업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하반기부터 불어온 엔저 바람은 이들에 순풍을 타게 했다. 원·엔 환율은 2012년 중반 1400원대에서 지난해 중반 1150원대로, 그리고 지난해 말엔 1000원대 밑으로까지 추락했다. 2년여 동안 무려 40% 하락한 것. 가격경쟁력이 크게 높아진 일본 부품업체들은 값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들과 경쟁하던 삼성전기, LG이노텍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전기는 형제회사인 삼성전자의 완제품 경쟁력을 기반으로 일본 전자부품업계가 70~90%씩 차지하던 세계시장을 조금씩 조금씩 파고들었다. 이 회사가 집중한 부품이 적층세라믹콘덴서(MLCC)다. 전자제품 안에 수백~수천개씩 들어가 전기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하는 ‘댐’과 같은 역할을 하는 MLCC는 10년 전만 해도 무라타제작소 다이요유덴 등 일본 회사의 전유물이었다. 1986년 사업에 뛰어든 삼성전기는 2001년까지도 점유율이 3%(업계 8위)에 불과했지만 차근차근 장비와 소재를 국산화해 지난해 30%에 육박하는 점유율로 무라타에 이어 확고한 2위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엔저로 일본 경쟁사들이 값을 떨어뜨리자 삼성전기도 여기에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MLCC 개당 단가는 지난해 평균2.63원에서 올 1분기 평균 2.35원으로 10.4% 급락했다.

이는 바로 실적에 영향을 줬다. 삼성전기는 작년 4분기 356억원의 영업적자를 냈고, 올 1분기 비용 절감을 통해 흑자 전환했으나 흑자폭은 151억원으로 증권업계 예상에 크게 못 미쳤다. MLCC 세계시장 점유율도 작년 1분기 26%를 정점으로 올 1분기 22%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 무라타의 점유율은 40%대 초반을 유지해오다 최근 들어 50%에 근접하고 있다. 덕분에 2014회계연도(2013년 4월~2014년 3월) 무라타 매출은 931억엔으로 전년도 423억엔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최근 소재·부품 시장에는 중국 바람도 강하다. 한국의 소재·부품 수입에서 중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23.8%에서 올해 1~7월 26.8%로 커졌다. 이 분야의 강국인 일본(20.9%)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중국산 정보기술(IT) 부품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특별취재팀 박수진(팀장)·김현석 산업부 차장·정인설 ·이상은 ·최진석·강현우·남윤선 산업부 기자·김태완 국제부 차장·전설리 IT과학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