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부터 민간 기업도 전력거래소에서 전기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관련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철강 시멘트 화학 등 에너지 소모가 많은 기업들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전력시장 참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LED(발광다이오드) ESS(전력저장장치) 등 전기설비 관련 제조업체들도 수요 확대에 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기 판매뿐 아니라 절전 기기 및 컨설팅 사업 등 직·간접적으로 연간 5000억원 이상의 시장이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절전도 發電] 민간기업도 아낀 전기 판다…연간 5000억 시장 '선점 채비'
○아낀 전기 팔 수 있다

4월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전기사업법은 민간 기업들이 아낀 전기를 전력거래소에서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공포 과정을 거쳐 오는 11월부터 시행된다. 지금까지 전력거래소에는 민간 발전사들만 공급자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기업들은 한국전력과 사전에 계약을 맺고 전기 수요가 급증하는 시점에 약속한 대로 전기 사용량을 줄이면 지원금을 받는다. 연평균 1000억원 안팎의 자금이 이런 방식으로 지원된다.

개정법은 전력수요관리사업자가 에너지 다소비 기업과 계약을 맺고 절전한 전기를 전력거래소에 팔 수 있도록 했다. 절전을 발전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 측은 연 2000~3000㎿의 전기가 절전 방식으로 전력시장에 공급될 것으로 예상했다. 2012년 가동을 시작한 신월성원전 1호기(1000㎿) 2~3개에 해당하는 규모다. 거래 금액으로는 연 2700억~4000억원대로 추정된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부 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정부는 기업이 아낀 전력 ㎾당 약 500~800원씩 지원하고 있다. 절전 물량을 전력거래소로 유인하면 시장 가격으로 매매되기 때문에 ㎾당 150원 안팎으로 지원금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ESS·LED 시장 확대 기대

절전을 발전으로 인정하면 전기를 아끼기 위한 각종 설비와 기기의 수요가 급속히 늘 것으로 관측된다. 전기를 모아뒀다가 필요한 시간에 꺼내 쓸 수 있는 ESS 설비를 갖추려는 기업이 급증할 전망이다. 대형 공장을 가동하는 대기업뿐 아니라 일반 상업용 빌딩 등도 아낀 전기를 전력거래소에 팔 수 있기 때문에 ESS의 인기가 치솟게 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LG화학 삼성SDI LS산전 효성 등 ESS 생산 업체들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ESS를 전력원으로 인정하는 것을 금지한 규제들도 최근 풀리는 추세다. 전기설비기술기준 제72조가 대표적인 사례다. 기존엔 건물의 비상용 예비전원으로 발전기만 인정했다. 최근 국회 주도로 ‘발전기 또는 2차전지 등을 이용한 전기저장장치’를 예비전원에 포함하는 내용으로 조항이 바뀌었다.

전기를 얼마나 절약했는지 보여주는 스마트 계량기 시장도 주목된다. LS산전, 벽산파워 등 관련 업체들이 수혜를 볼 수 있다. 전기를 어떻게 아껴야 할지를 조언하는 컨설팅 업체도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걸림돌은 일부 남아 있다. ESS를 비상전원으로 활용하려면 전기설비기술기준 말고도 20여개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 대부분 안전과 관련된 규제들이어서 단시일 내 해소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없지 않다.

○수익성 확보 여부가 관건

기업이 전력매매에 참여하면 초기 시장은 대기업이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 시멘트 등 전기를 대량으로 쓰는 업종의 대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절전 물량을 팔 것으로 보인다. 2012년의 경우 현대제철 고려아연 포스코 동국제강 쌍용양회 등이 절전 지원금 상위 10위권에 들었다.

정부는 시행령 등 하위법령에 그룹사들이 수요관리사업회사를 세울 경우 계약을 맺는 계열사 비중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이 수요관리 사업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박해영/남윤선 기자 bon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