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돈 끌어다 개인회사에 투입…회계장부 꾸며 사기대출
'배임 공모' 이희범 전 장관도 기소…비자금 사용처 계속 수사


'샐러리맨 신화'로 불린 강덕수(64) 전 STX그룹 회장이 재임 기간 2천억원 넘는 계열사 자산을 자신의 개인회사에 쏟아부은 사실이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페이퍼컴퍼니(서류상회사)를 만들어 회삿돈을 빼돌리는가 하면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를 바탕으로 사기성 대출을 받은 정황도 확인됐다.

STX그룹 전 경영진의 비리 의혹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임관혁 부장검사)는 강 전 회장을 구속기소했다고 8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강 전 회장은 2천841억원 배임과 557억원 횡령 혐의를 받고 있다.

2조3천264억원 상당의 분식회계와 이를 이용해 9천억원의 사기성 대출을 일으키고 1조7천5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한 혐의도 있다.

강 전 회장에게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사기와 자본시장법·외부감사법·상법·증권거래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계열사를 동원한 자금 지원은 STX건설에 집중됐다.

STX건설은 강 전 회장과 자녀들이 지분의 75%를, 나머지는 강 전 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포스텍이 소유한 개인회사였다.

2005년 설립된 STX건설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급성장하다가 2008년 이후 주택시장 침체로 자금사정이 악화했다.

강 전 회장은 유동성을 살리려고 기업어음(CP) 매입과 선급금 지급, 연대보증 등 갖은 수단을 쓴 것으로 조사됐다.

STX에너지 등 계열사 11곳은 2011년 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STX건설 CP를 1천784억원어치 사들였다.

이 가운데 948억8천만원 상당은 상환되지 않아 계열사가 떠안았다.

2011년 3월에는 공사 선급금 명목으로 ㈜STX 자금 231억원을 지급했다.

강 전 회장은 2012년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사업과 관련한 STX건설의 채무 상환자금을 마련하려고 포스텍을 유상증자에 참여시켜 200억원의 손해를 입혔다.

STX건설은 이 사업 시행사가 군인공제회로부터 1천억원을 빌리는 데 연대보증을 서줬으나 사업이 무산 위기를 맞자 STX중공업을 869억원 규모의 연대보증에 끌어들였다.

STX중공업은 지난해 12월까지 이 중 740억원을 대신 갚았다.

강 전 회장은 STX건설의 세금징수를 미루기 위해 STX리조트에 33억원 상당의 담보를 제공하도록 했고, 아예 담보도 없이 포스텍 자금 72억원을 STX건설에 빌려주기도 했다.

STX마린서비스는 2012년 공정이 중단된 STX대련조선소의 은행 차입에 263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담보로 잡혔다.

㈜STX 역시 포스텍의 차입금에 주식 225억원어치를 담보로 내주는 등 계열사간 '돌려막기'로 지배구조가 유지됐다.

해운경기 불황으로 위기를 맞은 STX조선해양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2조3천264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로 재무제표를 꾸몄다.

매출액에 영향을 주는 제조공정 진행률을 높이는 등의 수법을 썼다.

검찰은 STX조선해양이 허위 재무제표를 은행에 제시하고 대출받은 9천억원에 대해 사기 혐의를, 1조7천500억원어치 회사채 판매에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강 전 회장은 페이퍼컴퍼니인 글로벌오션인베스트를 내세워 ㈜STX의 유상증자에 참여한 뒤 포스텍 자금 240억원으로 대출을 갚았다.

자신 소유 포스텍 주식을 일본계 금융회사에 매각하고 다시 사들이는 과정에서 매입자금을 포스텍에 떠넘기는 수법으로 302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변모(61) 전 그룹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이모(50) 전 ㈜STX 경영기획본부장, 홍모(62) 전 STX조선해양 부회장, 김모(59) 전 STX조선해양 CFO 등 전직 그룹 임원 4명도 공범으로 구속기소했다.

STX중공업·에너지 총괄회장을 지낸 이희범(65) 현 LG상사 부회장과 권모(56) STX건설 경영관리본부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STX중공업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요청에 따라 지난 2월 전직 임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과정에서 강 전 회장이 임원들에게 성과급을 과다 지급한 뒤 되돌려받아 15억6천만원을 챙기고 ㈜STX에서 32억원을 가불해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수사가 시작되자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이 부회장이 정관계 로비 창구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STX중공업의 연대보증과 관련해 군인공제회 이사장에게 대출 연장을 부탁하는 등 범행에 적극 가담했다.

그러나 '정관계 접대 리스트'를 비롯한 로비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STX그룹은 한때 재계 11위까지 올랐으나 금융위기 여파로 주력 업종인 조선·해운·건설 분야에서 적자가 가중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지난해 해체됐다.

채권단은 지난 2월까지 계열사에 10조원 넘는 자금을 투입했다.

검찰은 계열사 부당지원으로 STX중공업 등 주력 계열사의 유동성이 약화됐고 대규모 분식회계가 장기간 진행돼 그룹 전체가 구조조정 적기를 놓쳤다고 봤다.

검찰 관계자는 "상장사를 동원해 개인회사를 지원하는 등 죄질이 불량하다.

비자금 사용처를 계속 살펴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김동호 기자 dad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