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 예산권·구성·증선위 기능 이관 등 이견 '수두룩'

금융소비자의 권익 강화를 위해 추진된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치 법안이 4월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기구 설치 자체가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정부와 국회가 쟁점 사안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앞으로 논의가 된다고 하더라도 합의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일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4월 국회에서 금융위 소관 20개 가까운 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이들 법안은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사위를 거쳐 이날 국회 본회의 통과가 예상된다.

소비자의 피해 구제를 위한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발목이 잡혔지만, 금융회사의 고객 정보 관리를 강화한 금융지주회사법과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의 통합을 위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은 통과됐다.

우리금융 민영화로 발생하는 세금을 감면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기획재정위를 통과해 이미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치를 위한 법안은 법안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치는 대통령 공약이기도 하지만, 최근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그 필요성이 한층 커졌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무난한 국회 통과가 예상됐다.

하지만, 막상 국회 논의가 시작되면서 법안 통과는 진통을 겪었고 정치권과 정부는 이견을 좁히는데 결국 실패했다.

정부는 현재의 금융감독원에서 떼어내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기구인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을 만든다는 구상을 법안에 담았다.

금감원에서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독하고 금소원에서 소비자 보호를 위한 감독 기능을 하게 한다는 복안이었다.

금융위를 중심으로 금감원과 금소원이 대등하게 존립하는 '1+2 체제'였다.

그러나 이는 벽에 부딪혔다.

정치권, 특히 야당은 금감원의 분리와 함께 금융위도 분리해 금소원의 상위 기구로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금소위)를 만들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2+2 체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야당과 정부는 힘겨루기를 하다가 양쪽이 한 발씩 물러서는 선에서 의견 일치를 봤다.

금융위를 분리하지 않되 금소원내에 금소위를 설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논의가 진행될수록 양측은 계속 충돌했다.

금소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금소원의 예산권을 어디에 둘 것인지를 두고 맞선 것이다.

야당은 금소원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정부로부터 완전 독립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금소원이 '독립적인 기구'가 될 수 있다는 견해였다.

이에 예산권은 직접 국회가 관장하고, 금소위의 구성에 국회 추천 인사가 참여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야당에도 위원 추천권을 달라고 했다.

정부는 즉각 반대했다.

한국은행도 예산은 기획재정부가 관장하는 점을 들어 금융소비자보호기구도 어느 정도 정부 통제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금소위 구성은 민간 전문가 등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추천권이 주어지면 금융소비자를 위한 기구가 자칫 정치적인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였다.

국회는 금융위가 금융소비자보호기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의심했고, 정부는 국회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설립 취지를 크게 벗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만큼 금소원 설치에 적극적이었던 정부는 쟁점을 한 번에 풀기 위해 금융 업권별 관련 감독 규정 제개정권을 금소원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예산 등에 대해서는 정부 통제를 받고 금소위도 민간 전문가로 구성하는 대신 금소원에 권한을 대폭 강화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그동안 금소원이 감독규정 제개정을 건의할 수 있다는 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으로, 정부로서는 나름 통 큰 제안이었다.

이에 논의가 어느 정도 진척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증권선물위원회의 기능 이관을 둘러싸고 부딪쳤다.

증권시장의 불공정거래를 조사하고 조치하는 증권선물위원회가 투자자보호 기능을 하는 만큼 그 기능을 금융위에서 떼어내 금융소비자보호기구로 이관하자고 국회가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증선위의 기능이 국민의 권리·이익을 박탈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등 정부가 해야하는 업무라는 점에서 민간기구에 부여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이에 양측이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결국 그동안의 논의는 실패로 끝나게 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정부로서는 최선을 다하겠지만, 다른 쟁점 법안들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돼 입법 여건도 좋지 않고 금융소비자보호기구에 대한 쟁점 사안들이 해결하기 어려워 기구 설치 자체가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태종 기자 taejong7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