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동 케이씨텍 사장이 14일 경기 안성시 미양면에 있는 본사 공장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평평하게 연마하는 CMP 장비 제조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케이씨텍은 지난해 말 CMP 국산화에 성공했다. 박영태 기자
주재동 케이씨텍 사장이 14일 경기 안성시 미양면에 있는 본사 공장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평평하게 연마하는 CMP 장비 제조공정을 설명하고 있다. 케이씨텍은 지난해 말 CMP 국산화에 성공했다. 박영태 기자
반도체 장비업체 케이씨텍의 한완택 전무는 2년 전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 삼성전자에 시제품으로 공급한 CMP(반도체 웨이퍼를 평평하게 연마해주는 장비)가 빈번하게 오작동을 일으킨 탓에 담당자로부터 ‘쓰레기 같은 기계 당장 가져가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던 것.

한 전무는 며칠 밤낮을 매달려 오작동을 잡아 나갔다. 자칫 3년 넘게 쏟아부은 CMP 개발 작업이 헛수고로 끝날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삼성전자는 오류를 개선하려는 케이씨텍 임직원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글로벌 강소기업 후보사’로 선정해 자금과 기술을 지원했다. 케이씨텍은 결국 지난해 말 기존 외국산 제품에 비해 생산성이 50% 이상 뛰어난 CMP 장비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케이씨텍에 230억원 규모의 CMP 구매 주문을 냈다.

LCD(액정표시장치) 세정 장비, 슬러리(반도체 웨이퍼 연마 때 쓰는 윤활제) 등이 주력 제품인 케이씨텍은 CMP 국산화를 계기로 1조5000억원 규모의 관련 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다. 미국 어플라이드와 일본 에바라 등의 고가 CMP 제품에 의존하던 삼성전자는 장비 구매비용을 낮췄다.

◆베테랑 기술자 파견

['상생 생태계'가 키운 히든챔피언] 삼성과 1년6개월간 300번 회의…반도체 CMP 국산화 성공
경기 안성시 미양면에 있는 케이씨텍은 직원 440명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장비업체다. 1987년 설립된 이후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고압가스 공급장치 등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납품해왔다. 2000년대 들어 LCD 세정 장비로 제품군을 넓혔으나 고부가가치 장비 제조 기술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2009년 6월 CMP 개발에 뛰어들었다.

케이씨텍이 지금까지 CMP 개발에 쏟아부은 투자액은 500억여원. 2011년 시제품을 만들어 삼성전자에 납품했으나 걸핏하면 오작동을 일으켰다. 협력사 스스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삼성전자는 케이씨텍의 CMP 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기술자를 케이씨텍에 파견해 기술개발을 거들었다. 고가 외국산 장비를 대체할 장비 국산화의 필요성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삼성전자가 지원을 본격화한 것은 2012년 7월이었다. 자금·기술·인력 등 경영 전반에 걸쳐 맞춤형 지원을 해주는 ‘글로벌 강소기업 후보사’로 케이씨텍을 선정하고 6명의 기술자를 지원군으로 투입했다.

1년6개월 동안 두 회사 기술진이 머리를 맞댄 회의만 300회가 넘었다. 주재동 케이씨텍 사장은 “성능시험 등을 수시로 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덕분에 개발 기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영시스템 업그레이드

삼성전자는 경영시스템, 제조, 재고관리 등 경영 전반에 걸친 개선 지원 작업에도 나섰다. 10명의 자문단은 176개 개선 과제를 정해 매일같이 진척 상황을 점검했다. 공급망관리(SCM) 시스템을 구축해 하루 단위로 자재 및 부품 관리가 가능해졌고 1주일이 넘게 걸리던 부품이나 자재 구매대금도 이틀 만에 정산할 수 있도록 했다. 주먹구구식이던 인사 제도도 정비했고 직무분석 시스템도 갖췄다.

제조공정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자문위원 1명이 1년 넘게 상주하면서 조립공정, 공구 분류 등의 표준화 작업을 주도해 CMP 한 대를 제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12주에서 8주로 크게 줄였다. 3만여개에 이르는 부품을 과거에는 주먹구구식으로 조립했으나 공정기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조립 순서를 매뉴얼화한 것. 300종에 이르는 공구도 체계적으로 분류하도록 해 공구 찾는 시간을 크게 줄여 업무 효율을 높였다.

주 사장은 “삼성전자 덕분에 경영 효율이 크게 개선돼 비용절감 등 적잖은 성과를 내고 있다”며 “앞으로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해 2017년에는 글로벌 CMP 2위를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안성=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