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규제개혁을 독려하고 있지만 정작 일선 부처들은 갖가지 ‘예외 인정’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개혁 작업이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빼달라"…규제개혁 벌써 '후퇴'
13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총리실)은 규제 건수가 20건 미만인 부처의 경우 신설 규제를 도입할 때 동일 비용의 기존 규제를 없애야 하는 규제비용총량제 의무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41개 중앙 행정부처 중 국무조정실, 농촌진흥청, 국세청, 병무청, 통계청, 권익위원회, 인권위원회 등 7개 부처가 이 기준에 해당한다. 이들 부처는 규제 건수가 미미해 신설 규제를 도입할 때 기존 규제를 없애기가 물리적으로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게 국무조정실이 내세우는 예외 인정 논리다.

하지만 당장 안팎의 눈총이 따갑다.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정작 (규제개혁)정책을 총괄하는 국무조정실은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꼬집었다. 논란이 일 조짐을 보이자 윤순희 국무조정실 규제정책과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의무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더라도 총리실은 자율적으로 규제비용총량제를 적용할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국무조정실이 이런 예외조항을 만들려고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른 부처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최근 국무조정실과의 실무회의에서 ‘우리도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부처에 비해 규제 건수가 많지 않은데다 외교·안보상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국방부와 외교부의 규제 건수는 각각 36건과 35건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까지 기존 경제규제 20% 감축’이란 정부 방침과 관련해 경제규제 수를 계산할 때 담합 금지, 불공정거래 금지 등 시장경제 룰(규범)과 직결된 120개 규제는 모수(母數)에서 빼달라고 총리실에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제들은 국제적으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규범에 해당돼 폐지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공정위가 가진 경제규제는 모두 394개로 정부 방침대로라면 이 중 20%인 79건을 2017년까지 줄여야 한다. 반면 공정위 방침을 적용하면 경제규제 수가 274건으로 줄기 때문에 공정위의 감축 목표도 55건가량으로 감소한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한국이 규제개혁 모범사례로 벤치마킹한 영국도 규범적 성격의 규제나 국제협약은 규제개혁 대상에서 제외한다”며 공정위 요구에 긍정적인 검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공정위가 규제를 덜 줄일 경우 다른 부처의 규제감축 부담이 커지거나 정부 전체의 규제감축 목표 달성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정부는 이미 전 부처 경제규제 1만1000여건 중 2200여건을 줄이겠다고 공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부 일각에선 국무조정실의 사전 의견조율이 불충분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부처별 규제감축 계획을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채 규제개혁 목표치를 내놓다 보니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둘러싸고 뒤늦게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주용석/김재후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