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미국 시민권자 김영광 씨(60)는 국내 은행 두 곳에 약 3억원씩 모두 7억원가량이 예치돼 있다. 최근 타결된 한·미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에 따라 이들 은행이 오는 6월 말 기준 김씨의 계좌잔액 등을 국세청에 보고하면 국세청이 이를 미국 국세청에 통보하게 된다.

문제는 그동안 김씨가 미 국세청에 국내 은행 계좌에 대한 신고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해외금융계좌신고(FBAR) 제도에 따라 1만달러 이상의 해외 계좌에 대해 신고했어야 한다. 이번에 그의 국내 계좌정보가 미국으로 넘어가면 미신고 기간 매년 최고 잔액의 50%를 벌금으로 내야 할 수도 있다.

김씨는 차라리 미국 국적을 포기하기로 했다. 굳이 시민권을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어졌고, 미국에 부동산이 없어 국적 포기 시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대해 매기는 국적포기세 부담도 없기 때문이다.

동포 부자들, 1만여 국내 계좌 해지·분산 '러시'

○13만명, 5만달러 초과 계좌 1만개

한·미 조세정보자동교환협정에 따라 미국 시민권, 영주권 등을 가진 동포 자산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6월 말 기준 국내에 있는 금융계좌 잔액 등 정보가 미국으로 넘어가기 전에 통보 대상에서 빠지기 위해서다. 은행 PB센터는 관련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 시민권을 가진 개인들은 해외에 1만달러가 넘는 금융계좌는 미국 재무부에, 5만달러가 넘는 계좌는 미국 국세청에 신고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미 과세당국이 일일이 파악하기 힘든 점을 이용해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내년부터 미국 시민권자 등 개인이 해외에 갖고 있는 계좌 정보를 해당 은행 등 금융사가 직접 미국 국세청에 신고하도록 했다는 점이다. 해외계좌납세협력법(FATCA)이라 한다. 금융사가 신고하지 않으면 미국 내 원천소득의 30%를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에 고객 비밀을 지켜주기 힘들게 됐다. 국내 거주 미국 시민권자 또는 영주권자는 약 13만명,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5만달러 이상 은행 계좌는 약 1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은행권은 파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자산가는 신고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예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6월 말 기준 계좌 잔액을 5만달러 밑으로 낮추기 위해 예금을 해지해 현금으로 보관하거나 다른 곳에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박정국 외환은행 세무사는 “한 금융사에서 5만달러만 넘지 않으면 금융사의 신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분산 예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자산가도 세금 ‘불똥’

미국에 계좌가 있는 국내 자산가도 문제다. 미국에 연간 10달러가 넘는 이자가 생기는 금융계좌가 있는 경우 한국 국세청으로 이자소득 등 정보가 넘어오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미국 계좌를 신고하지 않고 있었다면 소득 정보가 넘어오면서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가 될 수도 있다.

한·미 조세협약에 따라 한국에 살고 있지만 미국에서 이자 소득이 발생하는 경우 미 과세당국에 13.2%만 원천징수됐으나, 미국 소득정보가 파악되면 국내에서 최고세율 38%의 종합과세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금융 소득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원종훈 국민은행 세무사는 “미국 시민권이 있는 가족이 미국에 살고 있다면 미국 내 금융자산 일부를 그 가족에게 넘겨 국내로 넘어오는 정보 대상에서 빠져나가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