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투자자 '아베노믹스 실패'에 베팅?
일본 부흥을 기치로 내건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확산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시장에서 탈출하고 있다. 성장률과 무역·경상수지 등 각종 거시지표들이 기대치를 밑돌면서 일본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난주 외국인 107억달러 팔아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주 일본 증시에서 해외 투자자는 107억달러어치를 팔아치웠다. 이는 주간 기준으로 2005년 이후 최대 규모다. 외국인 투자자의 증시 이탈로 지난해 57%나 상승한 닛케이225지수는 올해 들어 13% 폭락했다. 전 세계 증시 가운데 가장 부진한 성적이다.

WSJ는 해외 연기금과 헤지펀드 등도 일본 증시에서 하나둘씩 발을 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6억7000만달러 규모의 투자자금을 운용하는 인베스텍애셋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대한 투자비중을 지난해 15~16%에서 올해 12~13%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해외 투자자의 일본 이탈이 단기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작년 4분기 일본의 전기 대비 성장률이 시장전망치(2.7%)를 크게 밑도는 0.3%에 그치면서 아베노믹스의 성공 가능성에 근본적인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의 무역수지도 지난달까지 20개월 연속 적자행진을 지속하면서 버팀목 역할을 하던 경상수지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지난해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는 전년 대비 31.5% 감소한 3조3061억엔에 그치며 통계 비교가 가능한 1985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아베노믹스 성장전략 지지부진

투자자들의 기대를 모았던 아베노믹스의 성장전략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법인세 인하 등 규제 완화는 검토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근로자의 임금 인상을 주저하고 있어 내수도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내달 예정된 소비세 인상(5%→8%)과 이로 인한 경기 급락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 와중에 일본 중앙은행(BOJ)의 기우치 다카히데 금융정책위원은 최근 “추가 양적완화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경기회복이 예상보다 더뎌지면서 일본 중앙은행이 추가 금융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일본은 사상 최대 규모의 일반 회계예산안을 마련,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재충전에 나섰다. 일본 참의원(상원)은 지난 20일 경기부양 효과가 큰 공공사업비를 대폭 증액하는 내용을 담은 95조8823억엔 규모의 올 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세출 예산을 승인했다.

공공사업비 규모는 5조9685억엔으로 전년 대비 12.9% 늘었고, 사회복지 예산도 30조5175억엔으로 사상 처음 30조엔을 넘어섰다. 아베 신조 총리는 “예산안이 조기에 확정돼 다행”이라며 “예산 조기 집행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번 예산안은 1999년과 2000년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빨리 처리됐다”며 “소비세율 인상의 충격을 완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심기 기자/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