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추적에선 증거 못찾아…현금·향응에 초점
금융소비자원, 감사원에 국민감사 청구


금융감독원이 KT ENS 협력업체들의 대출 사기 사건에 일부 은행 직원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집중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대출에 관련된 은행 직원들의 계좌 추적에서 증빙을 찾아내지는 못했으나 5년여간 1조8천여억원의 부실 대출이 발생하는 과정에서 은행이 몰랐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소비자원은 감사원에 금감원을 조사해달라는 국민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KT ENS 협력업체 사기 대출로 피해를 본 하나은행과 농협은행, 국민은행 그리고 삼성전자 매출 채권으로 사기를 당한 한국씨티은행에 대해 최근 현장 검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계좌 추적을 통해 이들 사기범과 은행 직원 간의 연루 가능성을 밝히는 데 집중했으나 명확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KT ENS 협력업체의 대출 사기 건은 은행 내부 직원의 공모가 없으면 힘들다는 판단 아래 계좌 추적으로 들여다봤는데 현재로선 눈에 띄는 증거가 없다"면서 "그러나 이런 종류의 대출 사기 사건에서는 뇌물을 현금으로 거래하거나 골프나 유흥 등 향응을 접대받았을 가능성이 커서 유심히 보고 있다"고 밝혔다.

주거래은행이었던 하나은행의 경우 1조1천여억원을 부실하게 대출해줬다가 1천600억원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오랜 기간 은행에서 내부 적발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다.

이번 대출과 연관된 직원만 4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대출 사기범의 해외 도피를 도운 혐의로 금감원 간부 김모 팀장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김모 팀장에게 해당 업체의 조사 사실을 알려준 다른 금감원 팀장도 연루 가능성을 의심받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부 감찰 결과 김모 팀장의 경우 문제가 있어 경찰에 수사 의뢰한 상황"이라면서 "다른 팀장의 경우 내부 직원이 물어보기에 사심없이 알려준 차원으로 대출 사기범들과는 연관이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금감원은 지난달 KT 자회사 직원과 협력업체의 대출 사기와 관련해 전체 금융권을 대상으로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 운영 실태에 대한 긴급 점검에 나선 결과, 다른 금융사에선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 등에 매출채권을 제대로 운영하는지 자체 점검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뒤 최근 결과를 받아봤는데 특별한 문제점이 나오지 않았다"면서 "현재로선 금융권에 매출채권 관련해 추가 부실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KT ENS의 직원 김 모씨와 협력업체 NS쏘울 대표 전 모씨 등은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의 허점을 이용해 허위 매출 채권을 발행하는 수법으로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에서 3천억원의 대출 사기를 벌이다 지난달 적발되자, 금감원은 유사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점검을 벌여왔다.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은 중소기업이 물품납입 대금을 효율적으로 회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어음대체 결제 제도로 2001년 한국은행이 도입했다.

물품 구매기업(대기업)이 판매기업에 대금을 어음으로 주는 대신 채권으로 지급한다.

판매기업(중소기업)은 이를 담보로 거래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조기에 현금을 회수할 수 있다.

일정기간이 지나면 구매기업이 대출금을 은행에 대신 상환한다.

KT ENS 협력업체 대출 사기 사건이 복잡하게 전개됨에 따라 금융소비자원은 감사원에 금감원의 부실 감독 책임을 조사해달라는 국민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

이 단체가 지난 1월 감사원에게 요구했던 금융사 고객 정보 유출 사건 국민감사는 받아들여져 지난주부터 금감원에서 감사가 이뤄지고 있다.

금융소비자원은 금융사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해 금감원에 국민 검사를 요청했다가 최근에 기각당했다.

그러나 최근 2차 유출이 발생했다는 발표가 나옴에 따라 금감원에 이의 신청을 하기로 했다.

금감원이 국민 검사를 다시 받아들이지 않으면 행정 소송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KT ENS 협력업체 대출 사기 사건은 무려 5년여간 1조8천억원에 달하는 부정 대출이 이뤄진 것을 금감원과 하나은행 등이 알아채지 못해 발생했다"면서 "감독 책임 부실과 내부 직원 연루 가능성이 있어 감사원에 국민 감사를 청구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김태종 기자 president21@yna.co.krtaejong7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