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TPP 참여, 노무현을 생각한다
36%(한국) 대 18%(일본). 더블 스코어 차이였다. 수출과 수입을 합한 전체 교역량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들과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을 비교한 것이다.

통상 경쟁국 한국을 의식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대반격에 나설 만했다. 지난해 3월 세계 최대 다자 FTA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여를 선언했다. 집권 3개월 만이었다.

아베 정부는 TPP를 포함해 2018년까지 FTA 체결 비중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호주 캐나다와 FTA를 타결해 40%까지 높인 한국이 2017년 목표로 잡은 69%보다 1%포인트 높다.

불 붙은 한·일 통상영토 전쟁

일본은 지금까지 주로 시장개방률이 낮은 수준(85~90%)의 FTA를 맺어왔다. FTA 상대국보다 큰 자국시장을 보호하면서 일본 기업이 상대국에 투자할 수 있는 보장을 받아내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한국이 미국 유럽연합(EU)과 대형 FTA를 잇따라 체결해 추월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TPP 참여로 FTA 체결 비중을 일거에 높인다는 전략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양국 간 FTA 체결 경쟁은 단순한 수치 경쟁을 넘어선다. 일본이 TPP 협상에 참여하면서 게임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게 우리 정부의 시각이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3~5% 높은 수출가격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가입국 간 관세를 철폐하는 TPP에서 제외될 경우 대(對) 일본 수출경쟁력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누적 원산지 규정에 따라 가입국에서 생산한 부품이나 소재,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도 얻지 못하게 된다.

TPP는 태평양을 접하고 있는 국가들이 관세 철폐 및 인하로 상호 교역을 확대하려고 추진 중인 FTA다. 현재 일본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칠레 멕시코 페루 등 12개국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12개국 비중은 38%에 이른다. 아베는 이런 TPP에 참여, 수출을 늘리고 경제구조를 개혁해 ‘잃어버린 20년’을 만회할 성장 동력의 핵심 축으로 삼았다.

아베와 같은 결단력 있나

일본의 5대 농축산품(쌀, 소고기 및 돼지고기, 유제품, 밀, 설탕) 시장 개방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 일본의 협상만 합의되면 12개국 간 TPP 협상은 최종 타결될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는 5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속한 타결을 밀어붙일 태세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관심만 표명해 놓은 채 TPP 참여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기존 12개국은 한국이 참여하면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건은 정부의 의지다. 아베와 같은 결단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12개국과의 예비 양자협의 결과와 이달 말 끝나는 국내 산업별 영향분석 결과를 놓고 2차 공청회를 연 뒤 참여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분출될 반대 진영의 저항은 불을 보듯 뻔하다. TPP가 미국 주도의 협정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좌파 진영을 들썩이게 할 듯하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한국에는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었다. 그는 지지기반인 좌파 진영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의 통상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한·미 FTA 협상을 결단했다.

김홍열 경제부 차장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