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신임 한국은행 총재 인선을 본격 검토하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1월 초다.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김기춘 비서실장을 통해 청와대 관련 수석과 외부 관계자 등 여러 경로에서 다양한 후보를 추천받았다고 한다. 한 관계자는 “후보군은 크게 전직 관료와 학자, 한은 내부 출신 등 세 가지로 분류돼 천거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전직 관료 출신은 한은의 독립성이란 원칙을 감안해 처음부터 고려 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기류에 밝은 여당의 한 의원은 “관료 출신은 일찌감치 배제된 채 학자군과 한은맨을 대상으로 청와대 인사팀에서 후보 본인의 동의를 얻어 내부 사전 검증절차를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처럼 일부 후보가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신 교수는 이미 국제결제은행(BIS) 경제자문역 겸 조사국장으로 내정된 뒤여서 애당초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신 교수에게 의사를 타진했지만,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식견, 정부와 민간을 두루 경험한 이력, 박 대통령과의 인연 등 각각 이유는 다르지만 조윤제 서강대 교수, 현정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을 한은 내부 출신보다 상대적으로 유력하게 점쳤다. 박 대통령도 막판까지 이들 학자군과 한은 출신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출신으로는 이주열 후보자 외에도 몇명이 물망에 올랐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후보자는 한은 출신 중에서도 가장 합리적이고 조직 내 신망도 두터웠던 분”이라며 “한은맨 중에서 낙점한다면 이 후보자가 1순위였다”고 말했다. 한은맨을 낙점한 데는 국회 청문회 통과를 염두에 둔 측면도 크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분석이다.

이 후보자는 박 대통령이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활동할 당시 한은 부총재로 상임위에서 얼굴을 마주한 것 외에는 별다른 인연이 없다.

이번 한은 총재 인선은 청와대 인사위원회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보통은 인사위에서 후보군을 추려 2~3배수의 최종 후보를 대통령에게 올리고, 대통령이 그중 한 명을 낙점하지만 한은은 정부 산하 기관이 아닌 만큼 인사위원회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며 “총재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이 여러 경로로 추천받은 뒤 10여명 이상의 후보군을 한꺼번에 놓고 본인이 직접 고심해 낙점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3일 인사가 발표된 시간(오후 2시30분)에 임박해서 이정현 홍보수석 등 일부에게만 이 후보자의 낙점 사실이 전달됐으며,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도 오후 2시10분께 통보됐다고 한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