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판결·연봉공개 따라 경영임원 사퇴 줄 이을 듯

경영에 손을 떼거나 경영전면에서 발을 빼는 재벌 총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처럼 범법자의 기업임원 활동을 제한한 법규에 밀려 경영 일선에서 떠나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총수의 책임경영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등기임원을 사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서는 총수들의 배임 판결과 함께 다음달부터 시작되는 등기이사 개별 보수공개 조치와 관련해 기업 총수들의 임원 선임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먼저 김승연 회장의 그룹 7개 계열사 대표이사직 사임을 필두로 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기업총수들의 이사직 사퇴가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죄 판결을 받은 김 회장은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해당업체의 사업허가 취소 및 업무제한이 불가피하다.

5년의 집행유예 기간이 끝나거나 사면을 받아야만 경영에 복귀할 자격이 주어진다.

김 회장과 함께 검찰의 상고 방침으로 다시 대법원 판결을 앞두게 된 구자원 회장 등 LIG그룹 총수 3부자,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대표이사직 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아울러 현재 재판중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호진 태광그룹 회장도 추후 계열사 대표이사 사임문제를 판단해야 한다.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각종 법규가 이들의 경영 활동을 실질적으로 막고 있고 지난해 경제민주화 조치 후속으로 기업총수의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사회분위기에서 별다른 쇄신 조치 없이 곧바로 경영일선에 돌아오기는 쉽지 않다.

또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STX그룹의 강덕수 회장, 팬택의 박병엽 부회장 등 재계의 '샐러리맨 신화'로 불렸던 기업인들도 경영난으로 연이어 무너졌다.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이들 총수와 함께 또다른 이유로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나는 기업인들도 적지 않다.

작년 11월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부인 이화경 부회장이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했고 두산그룹에서는 두산인프라코어의 등기이사였던 박용만 두산 회장과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 등이 대거 등기이사직을 내려놓았다.

모두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달부터 시행되는 연봉 5억원 이상의 등기임원 보수 공개를 염두에 두고 이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총수가 있는 30대 그룹에서 등기이사 평균연봉이 5억원 이상인 기업 117곳 가운데 대주주가 등기이사로 올라있는 기업은 57.3%인 67곳(60명)에 불과할 정도로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등재 비중은 매우 미미하다.

특히 대기업에 대한 전방위 사정과 함께 경제민주화 압박이 한창이던 지난해 상반기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대표 계열사인 롯데쇼핑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고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도 신세계와 이마트 등기이사 직을 사임했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이재용 부회장을 등기이사에 등재시키지 않고 있다.

이들 오너는 실제 회사경영과 관련된 주요 결정에는 참여하면서도 등기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기업 경영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법적 책임에서는 벗어나게 된다.

법률상 이사회에 참석해 경영과 관련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등기이사로 한정된다.

기업총수들에 대한 법 적용이 엄격해진 상황에서 기업인들이 주로 구성요건이 포괄적이고 모호한 배임죄로 처벌받는 사례가 많은 것도 경영전면에서 한발 빼는듯한 모습을 보이는 한 원인이다.

이에 따라 대주주 오너가 경영전권을 갖고 책임을 졌던 한국식 재벌 경영방식의 일부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총수 일가는 대주주로만 남고 경영을 전문경영인에 맡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대한 실험이다.

대한전선 오너인 설윤석 사장은 지난해 10월 원활한 구조조정 진행을 위해 58년 동안 3대에 걸쳐 지켜온 경영권을 자진해서 내놓았다.

SK그룹도 최 회장의 구속을 전후로 전면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했다.

최 회장은 2012년말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그룹을 대표하는 권한을 모두 내놓았고 전문경영인인 김창근 부회장이 신임 의장으로 선출됐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가 경영전면에 나섰던 한국식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이 대외적인 압박과 내부 필요성에 의해 점차 바뀌는 조짐"이라며 "최근 기업경영이 오너에 의한 결단, 추진력보다는 효율적 관리와 수익성이 중시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주호 기자 jo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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