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中企에 '1년차 연봉 5114만원' 요구한 금속노조
지난 13일 부산지역 한 일간지 1면에는 (주)삼성전자서비스 부산·경남지역 협력업체 사장들 명의로 호소문 광고가 실렸다. 이들 업체는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제품 수리 업무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회사들이다. 협력업체 사장들은 광고에서 금속노조연맹과 노조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노조는 ‘과도한 임금을 요구했다는 광고내용은 거짓’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본지가 17일 단독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조의 임ㆍ단협 요구안에 따르면 노조는 125개 조항을 협상안으로 제시했다. 먼저 수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던 종전과 달리 정기 월급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요구액은 근속 1년차 월 307만5833원(연 3691만원)~근속 25년차 월 642만9728원(연 7751만6736원)이다. 월 기본급 400%의 상여금도 요구했다.

또 품위유지를 위해 헤어 관리비 월 1만원(여성 직원은 월 4만원), 신발 구입비 연 2회(13만원), 근무복 구입비 연 4회(14만원) 지급 등 11가지 수당도 요구조건에 포함했다.

노조 요구대로 총연봉을 계산해보면 근속 1년차 직원(고졸 20세 기준)은 5114만원, 부양가족이 3명인 근속 10년차 직원은 7500여만원(일부 수당은 제외)을 받을 수 있다. 작년 중소기업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연봉 2806만원(중소기업중앙회 조사)의 두 배에 달한다. 다른 요구안도 비현실적이란 게 사측 주장이다. 노조는 근로자의 전환배치, 전직, 전보 등을 사전에 노조와 협의할 것과 팀장급 이상 관리자는 직원들의 투표로 선출할 것을 요구했다. 만 65세 정년 보장도 요구했다.

A협력업체 사장은 “대다수 협력사는 20~50명의 직원을 둔 중소기업”이라며 “대기업 뺨치는 연봉에, 사측 고유권한인 인사권까지 마음대로 하겠다는 요구를 어떻게 들어줄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노조 측은 ‘연봉 5000만원을 요구한다는 사측의 광고는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금속노조 산하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협력업체 사장들이 호소문을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 열악한 조건에서 일해왔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온라인 상에서도 논쟁이 한창이다. 주로 삼성전자와 협력업체 사장들을 비방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협력업체 사장들은 그러나 “협상안을 보면 호소문 내용은 분명한 팩트”라며 “금속노조가 임ㆍ단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를 대상으로 위장도급, 불법파견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전자가 자사 제품을 수리하는 업무를 협력업체들에 도급을 주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삼성전자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업무지시를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임ㆍ단협도 각각의 협력업체 사측과 해당 노조가 개별 협상을 벌이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질적인 협상은 금속노조가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는 109곳으로 이 가운데 40여개사의 근로자 1500명가량이 금속노조에 가입해 있다. 이 중 1004명은 작년 법원에 ‘협력업체가 아닌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임을 인정해달라’는 근로자 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불법파견 여부는 법원 판단에 맡기면 될 문제”라며 “그런데도 중소기업들인 협력업체를 상대로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거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