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 지방도시 숨베 인근에서 한국농어촌공사가 일구고 있는 목화농장 개발현장 전경. 넓이가 5000㏊ 규모로 여의도(840㏊)의 여섯 배에 달한다. 김현석 기자
앙골라 지방도시 숨베 인근에서 한국농어촌공사가 일구고 있는 목화농장 개발현장 전경. 넓이가 5000㏊ 규모로 여의도(840㏊)의 여섯 배에 달한다. 김현석 기자
[한경 특별기획] 아프리카 '농업혁명'을 꿈꾸다
“눈으로 보이는 지역이 모두 개척한 땅입니다.”(강현전 한국농어촌공사 해외사업단장)

광활하다. 앙골라 수도 루안다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다섯 시간(250㎞)을 달려 도착한 지방도시 숨베 인근의 농업현대화사업지. 서울 여의도의 여섯 배가 넘는 5000㏊(약 1512만평)의 황무지를 한국농어촌공사가 8년째 일구고 있다. 앙골라 정부가 농업 부활을 위해 2006년 한국 정부에 요청해 시작한 사업이다.

1단계로 2006~2010년 길이 120㎞에 달하는 관개수로를 만들었으며, 지금은 농경지를 정비하고 농민훈련센터, 농산물 저장고 등을 짓고 있다. 1단계 자금은 한국 정부가 공적개발원조(ODA)로 지원했으나 2단계는 앙골라 정부가 절반가량을 댔다. 오는 5월 공사가 완공되면 농민을 이주시켜 목화 농사를 시작한다는 게 앙골라 정부의 계획이다. “내년 이맘때 하얀 목화꽃이 피면 장관이겠지요.” 2007년부터 현장을 총괄해 온 강현전 단장의 말이다.

앙골라는 농업이 발달한 나라였다. 국토가 한반도의 5.5배에 달할 정도로 넓고 비옥한 데다 케베강 쿠안자강 등 거대한 강이 흘러 수로만 파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포르투갈 식민지 시대였던 1960년대 세계적인 커피 목화 수출국이었지만 1975년 독립과 함께 터진 내전이 32년간 지속돼 국토가 황폐화됐다.

그러나 2002년 전쟁이 끝나고, 이후 막대한 유전이 발견되면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농업부 공무원인 아벨 벨라 킨제카 사업소장은 “농업을 되살리고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이 같은 농촌개발 계획을 여러 개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곳은 케베강 유역이지만 곧 쿠안자강 유역도 개발할 것이며 목화 커피 등을 재배해 다시 수출국이 되겠다”고 설명했다.
앙골라 숨베 인근의 카송가 마을에서 한 주민이 주식으로 먹는 카사바(감자류)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현석 기자
앙골라 숨베 인근의 카송가 마을에서 한 주민이 주식으로 먹는 카사바(감자류)를 들어보이고 있다. 김현석 기자
인근 카송가 마을의 추장인 프란시스코 비에라 짐방가는 “예전에 목화 농사를 지으며 잘살았는데, 전쟁이 나 피란갔었다”며 “예전에 농업을 해봤기 때문에 기술이 있다. 다시 농사를 짓고 싶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은 앙골라와 사정이 비슷하다. 내전이 없더라도 제대로 개간돼 경작되는 땅이 많지 않다. 대륙 내 경작가능 지역은 한반도 면적의 80배가 넘는 8억㏊에 달해 잠재력은 엄청나지만, 실제는 2억㏊만 경작되고 있다. 경작가능 지역 일부만 활용하고 있는데도 아프리카 전체 고용의 64%와 국내총생산(GDP)의 30~40%를 차지한다(하버드대 자료).
알폰소 페드로 캉가 앙골라 농업부 장관이 작년 12월 루안다에서 열린 농업박람회에서 출품된 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김현석 기자
알폰소 페드로 캉가 앙골라 농업부 장관이 작년 12월 루안다에서 열린 농업박람회에서 출품된 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김현석 기자
이 때문에 고용을 늘려 성장을 촉진하려는 아프리카 각국 정부는 농업 분야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또 적도 인근 지역 일부만 빼고는 1년 내내 커피 등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최적의 기후 조건(연간 온도 15~24도, 우기와 건기 구분)을 갖춘 곳도 많다. 여기에 인구가 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식품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유엔인구계획에 따르면 아프리카 인구는 2060년이 되면 중국과 인도를 합한 것보다 더 많아진다. 출산율이 높아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농업회사인 애그리프로틴의 제이슨 드류 회장은 “2050년까지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식량 확보는 아프리카에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카메룬 상트르주의 한 농장에서 농부가 농사를 짓고 있다. 한경DB
카메룬 상트르주의 한 농장에서 농부가 농사를 짓고 있다. 한경DB
세계 각국은 아프리카 농업시장 선점에 뛰어들었다. 중국 정부는 2009년 아프리카 농업 개발에 5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뒤, 그해 전체 884건의 원조·지원사업 가운데 142건(16.1%)을 농업 프로젝트로 채웠다. 일반 산업과 관련된 프로젝트 145건(16.4%)과 비슷한 수준이다.

중국뿐 아니다. 미국 사모펀드 칼라일은 2012년 ‘사하라이남 아프리카펀드’를 조성한 뒤, 첫 투자처로 탄자니아 농업회사인 엑스포트트레이딩그룹(ETG)을 택했다. 투자금은 2억1000만달러. 또 미국의 도미니언팜스는 2003년부터 케냐에 1만7000에이커의 농지를 임대해 농장을 운영 중이다. 생산한 쌀은 아프리카 현지에서 판매하거나 유럽으로 수출한다.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지난 1월 식료품 유통체인회사인 초피스에 13% 지분을 투자했고, 2011년에도 남아공의 과일생산법인인 아프리프레시그룹에 지분 30%를 출자했다.

농산물 가공업도 유망산업으로 꼽힌다. 남아공의 음료수병 패키징회사인 낸팩은 지난해 앙골라에 유리병 등 패키징 생산공장을 설립했다. 전기와 용수 확보가 쉽지 않아 자체 발전소와 용수정화시설까지 갖춰야 했지만, 사업성을 보고 투자를 집행했다.

세계은행은 아프리카의 농산물 가공업이 현재의 3배 규모인 1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존 코피 바포에 아프리카개발은행(AfD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아프리카에서는 자원 분야뿐 아니라 이제 각 산업에서 성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조업의 경우 음식료 가공업의 성장성이 좋다. 중국은 벌써 많은 자금을 이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숨베(앙골라)·요하네스버그(남아공)= 김현석 /나이로비(케냐) =남윤선/배석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