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위기 앞에 무기력한 정부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냈다. 국민의 불안감을 달래주기는커녕 어설픈 대응으로 혼란을 부채질했다. 한마디로 우왕좌왕 허둥지둥이었다. 국민들은 정보 유출 사실에 한 번, 정부의 위기관리능력 부재를 목격하면서 또 한 번 분노했다.

지난달 8일 카드사 3곳에서 1억건의 고객정보가 새나갔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만 해도 여론은 덤덤했다. ‘또 터졌구나’ 하는 비아냥 정도가 흘러나왔을 뿐이다. 하지만 17일 유출 정보 확인이 가능해지면서 분노가 폭발했다. 전화번호와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카드번호와 유효기간 등 최대 19개 정보가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면서부터다. 박근혜 대통령과 사태 수습 사령탑인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개인정보마저 새나갔으니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증폭됐다. 영업점마다 카드 재발급과 해지를 위한 긴 대기줄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정보가 시중에 유통되지 않았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영업점은 북새통이고 안내전화는 먹통인 상황에서 당국의 대응은 한가롭게만 보였다. 국민은 공분했다. 정부 내부에서조차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흘러나왔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결국 22일 수습책을 내놨다. 사고가 터진 지 2주 만이었다.

하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리석은 사람은 무슨 일이 터지면 책임을 따진다’ ‘소비자도 정보 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고 연이어 실언을 하면서 오히려 여론이 악화됐다.

정부는 위기를 만회하겠다며 무리수까지 뒀다. 금융사에 전화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한 영업을 3월 말까지 전면 금지한 것이다. 텔레마케터 수만명의 고용이 불안해진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았지만 비상상황에서 극약처방이 불가피하다며 밀어붙였다. 악수였다. 생계가 곤란해진 텔레마케터들의 반발이 거셌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밥줄을 끊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발표 시점이 24일로 마침 설 연휴 목전이라 동정 여론도 비등했다. 신 위원장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물론 현 부총리까지 포함해 경제수장들을 물갈이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었다. 결국 정부는 대책 발표 8일 만에 텔레마케팅 영업의 단계적 재개를 허용해야 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