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있는 스탤리온그룹의 상용차 조립공장에서 현지 근로자들이 버스를 만들고 있다. 김현석 기자
나이지리아 라고스에 있는 스탤리온그룹의 상용차 조립공장에서 현지 근로자들이 버스를 만들고 있다. 김현석 기자
[한경 특별기획] 모터라이제이션 본격화…車 팔려면 '검은 땅'서 만들어라
귀마개를 했는데도 기계 소리가 귀를 때린다. 나이지리아 경제수도 라고스 인근에 자리 잡은 스탤리온그룹의 상용차 조립공장은 풀가동 중이다. 일본 닛산, 한국 현대자동차 등에서 반조립 차체와 부품을 받아 조립생산(KD·Knock Down)을 본격화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출고 대기시간이 벌써 4~5개월에 육박한다.

지난달 24일자로 나이지리아 정부가 완성차 수입관세를 20~35%에서 최대 70%로 한꺼번에 높이자 주문이 폭주해서다. 조립생산 차량은 관세가 5~10%로 오르지 않았다. 아프리카 각국이 자동차, 전자제품 등에 대한 관세를 잇따라 높이고 있다. 30~40%에 달하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제조업을 키우려는 조치다. 수입차를 소비하기만 하던 아프리카가 이제 자동차 생산에 나선 이유다.

모터라이제이션 시작된 검은 대륙

대니얼 애커슨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은 작년 4월 “아프리카의 차량 판매가 매년 20%가량 늘어나 2014년 200만대를 넘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두터워진 중산층이 오토바이와 고물차를 버리고 괜찮은 차를 사기 시작했다는 게 애커슨 회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그렇다. 지난해 아프리카에서 팔린 차는 174만대로 전년보다 20%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부분 국가가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를 넘어서며 ‘모터라이제이션(자동차의 대중화)’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 5년 뒤엔 최소 연 300만대 이상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조립생산 등 현지 기여 불가피


[한경 특별기획] 모터라이제이션 본격화…車 팔려면 '검은 땅'서 만들어라
글로벌 기업들은 시장 선점을 위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를 활용해 아프리카 각국 정부는 다양한 산업육성 정책을 내놓고 있다. 수입 관세 등을 높여 현지 제조를 유도하는 식이다. 김영용 KOTRA 아프리카본부장은 “각국이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제조업 부흥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장사하려면 이곳 경제에 기여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이지리아가 대표적 사례다. 인구 1억6000만명의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수요가 가장 큰 곳이다. 나이지리아 산업통상투자부에 따르면 연간 자동차 수입 규모는 신차 5만대, 중고차 20만대 등 25만대에 달한다.

스탤리온그룹은 작년 나이지리아에서 235대의 상용차를 팔았다. 110여대는 완성차를 수입했고, 나머지는 조립생산을 했다. 당초 올해 500대 판매를 목표했지만, 완성차 수입 관세 인상으로 조립생산을 대폭 늘리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스탤리온 상용차 공장의 프라카쉬 카랏 공장장은 “아프리카에서 장사하려면 현지에서 만들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혼다는 작년 9월 나이지리아에 현지법인을 세워 직판체제를 구축했다. 그동안은 현지 딜러를 통했다. 닛산도 남아공과 이집트, 케냐에 이어 나이지리아에 생산 거점을 마련한다. 닛산은 2016년 판매 대수를 2012년의 두 배로 늘린다는 목표다. 1961년 진출한 도요타는 지난해 전년 대비 15% 증가한 23만8000대를 팔았다. 이에 따라 남아공 더반 공장 생산규모를 1.5배로 확대했다.

중국 이치자동차도 남아공 공장(연 3만대)에 이어 카메룬에도 공장 설립을 신청했다. 치루이자동차도 케냐 공장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성장하는 시장을 고려하면 향후 2~3년의 투자 판단이 성패의 갈림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전자 조선 등에도 가해지는 압력

자동차뿐이 아니다. 정부 입김이 큰 원유·가스 산업은 현지 부품이나 인력 채용, 조립생산을 주문하는 ‘로컬콘텐츠’ 요구가 늘고 있다.

앙골라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은 2010년부터 토탈 셸 엑슨모빌 등 석유 메이저들에 로컬콘텐츠를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소난골은 이를 위해 네덜란드 부이전문회사 SBM, 대우조선해양과 합작해 수도 루안다에서 200㎞가량 떨어진 포트 암보임에 파이널조선소를 세웠다. 북쪽 해안 17광구에서 시추하고 있는 토탈은 대우조선해양에 주문한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클로브’를 작년 11월 90% 완성 상태에서 끌고와 파이널조선소에서 마지막 조립을 마쳤다. 현지 인력과 부품을 써야 해서다.

로컬콘텐츠 비율은 수년 내 40%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세자르 게레라 파이널조선소장은 “원유를 캐내려면 자원을 가진 나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가전 등도 마찬가지다. 현재 각국의 냉장고 세탁기 등에 대한 관세는 20~40% 수준인데, 현지 조립생산을 하면 5~10%에 불과하다. 최근 가나는 가전 수입 관세를 두 배로 높이기도 했다.

아프리카 비즈니스의 敵 부정부패
지하경제가 42%…외국인엔 뇌물요구


앙골라 루안다 공항을 나서는데, 보안검사 줄이 길다. 그런데도 한국인인 기자를 잡더니 한참 짐을 뒤진다. 그러더니 조용히 말한다. “뭐 없느냐?(Anything for me?)”

못들은 척했더니, 툴툴대며 그냥 보내준다. 민주주의와 교육이 확산되며 줄었다지만, 아직도 여기저기에서 부정부패 현장을 접할 수 있다. 차 앞자리에 타지 말라는 얘기도 들었다. 외국인이 보이면 현지 경찰이 뇌물을 바라고 무조건 잡는다는 것.

가끔 언론에 나오는 부정부패는 황당한 수준이다. 작년 12월 나이지리아 국영 석유공사가 정부 계좌에 넣어야 할 원유 판매 대금 500억달러를 누락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앙골라에서도 2012년 국영 석유회사 소난골에서 43억달러의 돈이 증발됐다.

부정부패 탓에 지하경제도 엄청나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아프리카 지하경제 규모는 평균 42%에 달한다. 세금을 내지 않고 물건을 밀수해 길에서 파는 것이다.

라고스(나이지리아)·루안다(앙골라)=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특별취재팀 김현석 팀장(산업부 차장), 남윤선·김보라(국제부), 전설리(IT과학부), 배석준(산업부) 기
자, 조학희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전략시장연구실장, 홍정화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