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Fed) 100년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인 재닛 옐런 시대가 출범했다. 작년 9월 지명 이후 의회 승인 절차 등에서 밝힌 소신을 보면 벤 버냉키 직전 Fed 의장과는 사뭇 다른 입장을 보여 벌써부터 ‘옐런 독트린’이라는 용어까지 나온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앙은행의 목표는 정책여건에 맞게 수정돼야 한다고 강조한 점이다. 전통적으로 중앙은행의 목표는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 있다. 밀턴 프리드먼과 같은 통화론자들은 ‘천사와의 키스’만 할 것을 주장해왔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이외의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악마와의 키스’라 할 정도로 금기시해왔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글로벌화되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됨에 따라 물가는 추세적으로 안정돼왔다. 날로 격화되는 경쟁을 이기기 위해 최종상품의 가격파괴에 따른 ‘월마트 효과’가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가의 물가는 중앙은행이 설정한 인플레이션 타기팅선을 하회하고 있다.

이런 정책여건에서 중앙은행은 물가안정만을 고집하기보다 고용 등과 같은 다른 목표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옐런 의장의 기본입장이다. 이미 Fed는 2012년 12월부터 물가안정과 고용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통화정책을 운용해오고 있으며, 옐런 의장은 버냉키 전 의장보다 고용창출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옐런 의장의 이런 시각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는 것이 ‘최적통제준칙(optimal control rule)’이다. 이 준칙은 Fed의 양대 책무를 달성하기 위해 두 목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정책금리 경로를 산출해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특히 고용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면 물가가 일시적으로 목표치를 벗어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대 책무인 출구전략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신중하고 점진적인 방식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성급한 출구전략은 집권 2기를 맞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전력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Fed 내부적으로도 성급한 출구전략으로 경기가 다시 침체될 경우 정책 실패의 책임을 모두 지게 되는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출구전략은 경기 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방지하는 것이 아닌 만큼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이라는 가장 큰 목표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옐런 의장의 신념이다. 이 때문에 출구전략을 추진 중이라도 금융시장이 혼란한 국면이 지속되거나 경기가 재침체될 조짐을 보이면 출구전략을 중단하고 언제든지 경기부양에 다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과의 소통 문제는 Fed의 전통이자 장점이기도 한 시장의 예상을 그대로 따르는 ‘순응적 선택’을 원칙으로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Fed의 의중을 시장이 잘못 읽거나 정책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운 애매모호한 상황을 맞으면 ‘체크 스윙’ 차원에서 역행적 선택을 자주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옐런 의장의 남편인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비대칭 정보를 활용해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은 ‘역행적 선택이론’의 대가다. ‘역행적 선택이론’이란 경제활동에 필요한 완전한 정보를 보유하지 못할 때 발생하는 현상을 분석하는 정보 경제학과 행동 경제학의 한 부류다.

금융시장과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권은 금융위기 재발 방지 차원에서 중앙은행으로 집중돼야 한다는 것이 옐런 의장의 시각이다. 6년 전 금융위기도 다양한 금융상품의 문제점이 세계적으로 번져나가는 동안 감독기구들이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해졌다는 비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