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를 필두로 한 신흥국의 금융시장 혼란이 일단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인도와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중앙은행이 통화가치 방어를 위해 잇달아 기준금리를 올리자 주요 신흥국 통화가치 급락세가 진정되는 양상이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이번 신흥국 위기가 과연 선진국의 실물 경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르헨티나 터키 등의 금융시장 불안은 일부 신흥국의 국지적 혼란에 그칠 것이라는 낙관론과 신흥국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선진국 실물경기 역시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이란 비관론이 팽팽하게 맞서 있다.

비관론 진영에는 일본 노무라증권과 프랑스 소시에테제네랄은행 등이 있다. 29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노무라증권은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의 위기가 장기화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지역과의 무역 거래가 많은 스페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칼라 마르쿠센 소시에테제네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통화가치 급락 현상이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되면 글로벌 경제 전체에 적잖은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라와 소시에테제네랄이 이같이 우려하는 것은 글로벌 경제 전체에서 신흥국 위상이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2012년 기준)로 20년 전(약 18%)에 비해 두 배 수준으로 높아졌다.

반론도 있다. 미국 월가의 리서치업체 코너스톤매크로는 “특정 국가의 국지적인 위기와 광범위한 위기 간에는 큰 차이가 있다”며 “미국 중앙은행(Fed)은 아르헨티나 터키 등의 통화가치 급락 현상이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측하지 않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크리스찬 노이어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도 “일부 신흥국 위기로 유럽지역 실물경기가 타격받을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들 낙관론자가 주목하는 것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와 남미 지역의 외환위기다. 당시 상당수 신흥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1997년과 1998년 4%대 성장세를 유지했고, 같은 기간 유로존도 2.5%의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논설위원은 이날 ‘위기 이후 세계의 도전들’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올해 선진국 경제 전망이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생산량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은 아니다”며 “이런 상황에서 중국 경제가 근본적인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한다면 세계 경제는 동반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