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명예회복'과 '반성부터' 사이
한동우 전 신한생명 부회장은 안타깝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조직이 망가지는 걸 보며 분노도 치솟았을 것이다. 권력 다툼을 벌이는 상사(라응찬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와 동료(신상훈 신한금융 사장), 후배(이백순 신한은행장)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도 없었을 것 같다. 2010년 9월 터진 이른바 ‘신한사태’로 신한 브랜드가 무너져 내리는 것에 비례해 분노와 원망은 더 커졌을 게 분명하다.

신한사태가 터진 지 7개월 만인 2011년 3월 그는 신한금융 회장이 됐다. 그후 신한사태 후유증을 털어내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신한사태를 둘러싼 재판이 3년여 동안 진행되면서 신한사태 뒷얘기는 툭하면 언론에 언급됐다.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 올리려던 그의 노력에도 제동이 걸렸다. 마침내 지난달 말 2심 재판이 끝났다. 그의 연임(임기 3년)도 확정됐다. 과거를 털어내고 도약할 수 있는 호기라고 여겼을 법하다. 그런데 신 전 사장이 난데없이 ‘원상회복(복직)’을 들고 나왔다.

한동우 회장 “신 前사장은 당사자”

“신한사태 모든 당사자들은 더욱 겸허해지고 반성해야 한다”(지난 9일 한 회장 기자간담회)는 말은 이래서 나왔다. 신 전 사장만을 겨냥한 건 아니었다. 3명 다 신한의 브랜드를 깎아내린 장본인이니 자중자애해야 한다는 평소 생각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신 전 사장은 이런 논리를 수긍할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고소를 당했으니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다. 2심 재판부조차 “고소의 경위나 의도에 석연치 않은 사정이 엿보이고 고소 내용도 대부분 사실과 다르다”고 말할 정도였다. 누구보다 주변 사람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자신으로 인해 직원들이 고통받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는 3년여의 법정 다툼 끝에 2심에서 벌금 2000만원(1심은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은행 임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 자격도 회복했다.

신 전 사장은 2심 판결이 나왔을 때만 해도 복직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자신과 관련된 직원들의 명예만 회복하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그가 태도를 바꾼 것은 2심 판결 다음날 있었던 임원 인사였다.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한 직원은 불이익을 받은 반면, 반대편에 섰던 직원은 승진한 것으로 해석되자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은행 측은 물론 정당한 인사였으며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한다.)

신상훈 前사장 “나는 피해자”

그래서 나온 게 ‘원상회복’과 ‘진상규명’이었다. 그는 “단 하루만이라도 복귀해 퇴임사를 하고 물러나고 싶다”고 했다. 피해자인 만큼 명예회복을 해달라는 거였다.

두 사람의 입장은 이처럼 천양지차다. 한쪽은 ‘신한사태의 당사자’라고 규정하고 다른 한쪽은 ‘신한사태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한쪽은 ‘과거를 덮고 미래로 나가자’고 하고, 다른 한쪽은 ‘잘못된 걸 바로잡아 신한문화를 바로 세우자’고 하니, 간극이 좁혀지긴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알고 있다. 신 전 사장이 ‘단 하루’ 복직하더라도 조직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걸 말이다. 결국은 공감대는 넓히고 간극은 줄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 노력은 아무래도 신한사태에서도 자유롭고, 국내 최고 금융그룹의 수장자리를 연임한 한 회장이 먼저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