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권오준 포스코 사장이 16일 저녁 업무를 마치고 서울 대치동 본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권오준 포스코 사장이 16일 저녁 업무를 마치고 서울 대치동 본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기술력을 바탕으로 포스코를 재도약시키겠다.”

포스코 차기 회장에 내정된 권오준 기술총괄 사장은 16일 오후 차기 회장으로서의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포스코는 좋은 기술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며 “인수합병(M&A)을 통한 외형 확장보다는 기술을 개발해 일류 기업으로 키워가겠다”고 강조했다. 엔지니어 출신답게 포스코의 성장 기회를 기술 개발을 통한 경쟁우위에서 찾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포스코는 1968년 4월1일 취임했던 고 박태준 명예회장을 시작으로 정준양 현 회장까지 총 7명의 회장을 배출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권 사장처럼 기술 분야에서 한길만 걸어온 인물은 없었다. 최고기술책임자(CTO)의 회장 등극으로 포스코 경영 문화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M&A에서 ‘기술경영’으로

포스코 내부에서는 ‘제철소장 출신이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구택 전 회장과 정준양 현 회장도 제철소장 출신이다. 품질에서 앞서기 때문에 제대로만 만들면 파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제철소장의 관리 역량이 그만큼 중요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저가 제품만 만들 줄 알았던 중국의 기술력이 무섭게 향상되기 시작했다. 아직은 포스코가 우위를 지키고 있지만 추월은 시간문제라는 위기감이 커졌다.

2009년 2월 취임한 정 회장이 위기 돌파를 위해 선택한 것은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였다. 포스코는 5조원 이상을 투자해 종합상사인 대우인터내셔널과 플랜트업체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등을 대거 사들였다. 2009년 36개이던 계열사 수는 한때 70여개로 늘어났다. 또 포스코 자체도 사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정 회장은 철강·에너지·소재에서 2020년까지 매출 200조원을 달성해 글로벌 100대 기업에 진입하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포스코 새 회장에 권오준] 위기의 포스코 맡은 鐵전문가…기술경영으로 '강철 본능' 깨운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는 좋지 않았고, 본업인 철강 이외의 분야에서 포스코의 진가는 빛을 보지 못했다. 2008년 17%에 달하던 포스코의 영업이익률은 작년 3분기 4.2%로 추락했다. 2008년 9조2497억원이던 부채는 지난해 14조원대를 넘어서면서 신용등급이 강등되는 굴욕을 겪었다. 50%대이던 부채비율이 한때 90%를 넘기도 했다.

◆내부 출신, 오히려 개혁 부담 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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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사장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데에는 정준양 회장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정 회장이 가장 믿는 사람을 후임으로 뽑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전부터 정 회장이 권 사장을 신임해 중용해왔다는 점에서 그런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권 내정자가 풀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먼저 아직도 남아 있는 공기업 문화를 타파하는 등 조직을 쇄신해야 한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는 “내부 출신이 차기 회장이 된 만큼 모범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며 “방만한 투자로 늘어난 계열사를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라고 말했다.

정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도 시급하다. 어찌됐건 정준양 회장의 사의 표명으로 ‘정권이 바뀌면 포스코 최고경영자(CEO)도 교체된다’는 공식이 이번에도 적용됐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으로 확실한 독립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도입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기술 전문가이기 때문에 관리경영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권 사장은 그러나 기술 외 다른 분야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다는 게 주위 전언이다. 권 사장은 평소 지인들에게 “비철금속 비중을 현재보다 높여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했다. 제품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도 상당한 고민을 해왔다는 것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기술 개발은 곧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며 “기술 파트는 평소 생산 및 마케팅 부문과 협업이 많은 만큼 권 사장이 리더십을 발휘하면 조직 전체를 이끌어가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