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임원 연봉삭감 칼바람…고액 논란에 결국 '백기'
신한 KB 하나 등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2012년 각각 20억원 안팎의 보수를 받았다. 이들 회사에 속한 은행의 행장들도 평균 10억원 안팎을 손에 쥐었다. 기본 연봉에 장·단기 성과급, 활동비 등을 합친 것이다.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들의 보수는 늘어나는 추세여서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금융사들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지주사 회장 연봉을 최대 40% 깎기로 했다. 일부에서는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금융회사 임원의 보수 삭감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실적 악화 땐 보수 삭감 폭 더 커져

KB 신한 하나 등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회장의 연간 보수를 30~40%가량 깎기로 최근 의견을 모으고 금융당국에 이런 방안을 전달했다. 은행장을 포함한 자회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 보수도 차등 삭감하기로 했다. 은행장과 자회사 CEO의 경우 20~30%, 자회사 임원은 10~20%씩 보수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연봉과 장·단기 성과급 등 보수 테이블 자체를 변경하는 것이어서 회장뿐만 아니라 자회사 CEO, 일반 임원들의 보수도 하향 조정하게 된다”며 “다음달 이사회와 보수평가위원회에서 이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달 말까지는 구체적인 윤곽이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 의결을 거치면 올 1월부터 소급 적용된다.

금융지주사들은 보수 삭감 ‘폭’을 서로 조율하는 동시에 큰 차이를 보였던 장·단기 성과급 체계도 최대한 비슷하게 맞춰 조정하기로 했다. 실적이 좋으면 많이 받되 나쁘면 그만큼 덜 받는 ‘실적 연동형’ 구조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연간 실적이 목표를 밑돌 경우 실제 보수 삭감 폭은 더 커질 전망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들이 이번에 정한 삭감 폭은 실적 목표를 100% 달성했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라며 “수익성이 악화되면 그만큼 성과급이 떨어져 전체 보수는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적 나빠도 연봉은 올라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회장을 포함한 임원의 보수를 대폭 깎기로 한 것은 수익성 악화와 ‘고액 연봉’ 논란에 대한 부담 탓이다. KB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5조3000억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30% 줄어든 규모다.

하지만 CEO를 포함한 임원들의 연봉은 해마다 오르는 추세였다. 2012년 지급된 금융지주사 회장의 연간 보수는 △신한금융 27억원 △KB금융 24억원 △하나금융 14억원 △우리금융 9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 등 4대 시중은행장의 평균 연간 보수도 기본급과 성과급을 합쳐 평균 10억원 안팎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두 기본 연봉에 장·단기 성과급, 활동비 등을 합친 것이다. 장기 성과급은 책정된 최대 금액이 지급되는 걸 가정한 것이다.

은행들의 수익성 악화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 두드러지고 있다. 국민 우리 신한 하나 외환 등 5개 주요 은행의 2012년 직원 1인당 생산성(당기순이익/직원 수)은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보다 37% 급감했다. 반면 이 기간 직원 평균 연봉은 6648만원에서 7818만원으로 18% 올랐다. 임원들의 보수도 이와 비례해 상승했다. 실적이 좋으면 그에 비례해 보수를 올린 반면, 실적이 나빠도 적게 떨어뜨리는 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금융사들은 이런 지적을 감안해 임원들의 보수체계를 실적연동형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에 따라 임원들의 보수는 10~40% 차등 삭감된다는 게 금융회사들의 설명이다.

고액 연봉에 대한 금융당국의 부정적 시각도 작용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말 금융지주 은행 금융투자(증권) 보험 등 4개 권역 65개 금융사의 고정급과 장·단기 성과급을 조사한 후 상당수 CEO가 성과에 비해 과도한 보수를 받고 있다는 결론을 냈다. 또 정부가 최근 금융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막기 위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의 기관장 기본성과급 상한선을 현행 기본급의 200%에서 120%로 하향 조정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민간 금융회사 자율성 침해”

금융지주사들의 이번 보수 삭감 방안을 놓고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지주사들이 겉으론 ‘자율적’ 판단에 따라 보수를 깎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사실상 금융당국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애초 각 금융지주사는 작년 하반기 개별적인 보수 반납 또는 삭감 방안을 추진해왔다. 신한금융은 회장과 은행장의 보수를 약 30% 깎기로 했으며 KB금융도 10~20%가량 보수를 삭감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나금융은 회장과 은행장 등 경영진의 급여 중 20~30%를 반납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지난해 말 금융지주사들에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사실상 공통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후 금융지주사들은 TF를 만들어 공동 보수 삭감 방안을 논의했고 결국 회장 보수를 30~40%가량 깎는 데 합의하게 됐다.

이에 따라 정부가 민간 금융회사 임원의 연봉 수준까지 관여하는 것은 지나친 경영 간섭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금융지주 임원은 “임원 연봉 수준은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큰 요인인 데다 직원들이 미래를 보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며 “무조건 금융회사 CEO와 임원의 연봉을 깎아야 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 임금 삭감과 반납

임금 삭감은 임금 체계를 아예 하향 조정하는 방법으로 임금을 깎는 것을 말한다. 임금이 줄어들면 평균임금도 감소한다. 따라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퇴직금 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비해 임금 반납은 일단 받은 임금 중 일부를 되돌려 주는 것을 의미한다. 명목상 임금에는 변동이 없어 퇴직금 등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음 임금 상승액을 산정할 때도 반납 전 임금을 기준으로 한다. 다만 반납 전 임금을 기준으로 근로소득세가 부과된다.

장창민/박신영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