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M&A·무리한 사업확장…'쓴맛' 봤지만 두번 울지 않으리
정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해외 진출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공언한 뒤 금융회사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시장 개척으로 ‘금융의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되겠다는 의욕도 충만하다. 하지만 의욕을 성공으로 이어가려면 만반의 대비가 필수적이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해외에서 제대로 성과를 거두려면 과거에 실패한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감한 도전과 치밀한 전략으로 금융한류의 ‘희망’을 쏘아 올린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지만, 쓰디쓴 실패와 좌절의 경험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금융한류 확산을 위해서는 그간의 실패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투자 △삼성증권 홍콩법인의 사업 확대 △한국 은행들의 태국시장 대거 철수 등의 실패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초기 오판이 막대한 손실 불러


국민은행의 카자흐스탄 BCC 투자는 경영진의 초기 오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국민은행은 2008년 8월부터 2010년 2월까지 9541억원을 투자해 BCC 지분 29.6%를 취득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들인 지분의 가치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1371억원(장부가)으로 쪼그라들었다. 투자액의 85.6%인 8170억원의 대규모 손실이 난 것이다.

경영진의 정확한 경영 판단, 해외사업부서와 인수합병(M&A) 담당 부서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정상 작동했다면 이런 투자는 애초에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민은행이 BCC 인수를 검토하던 2007년 당시 카자흐스탄 은행들은 부동산 버블 붕괴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 그런데도 국민은행은 2007년 12월 이사회에서 ‘장밋빛 전망’을 제시했다. 2011년 예상 순이익이 BCC가 전망한 2억9000만달러보다 많은 3억4000만달러로 수정돼 이사회에 보고되기도 했다.

자산실사가 15일(영업일 기준) 만에 속전속결로 진행된 탓에 주식 인수 가격도 주가순자산비율(PBR) 4.78배의 높은 수준에서 책정됐다. 기존 주주들에게 5511억원의 막대한 매매차익을 안겨준 셈이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 거품이라는 경기흐름을 읽어내지 못한 게 가장 큰 실패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도전정신은 좋았지만…

삼성증권이 2009년 벽두부터 추진한 홍콩법인의 사업 확대는 현지에서 영입한 인력 관리와 사업 다각화에 실패하며 약 3년 만에 사실상 철수해 또다른 실패 사례로 꼽힌다. 2009년 당시 삼성증권은 ‘2020년까지 글로벌 톱10 진입’이라는 비전을 설정했다. 그 실현 전략으로 아시아 금융 중심지 홍콩의 현지 법인을 공격적으로 확장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삼성증권은 영업·리서치 인력 확보와 관련 인프라 구축을 위해 2009년 상반기에만 1억달러를 증자했다. 10명 안팎이던 인력도 60명으로 늘렸다. 단순히 한국물을 중개하는 데서 벗어나 홍콩H주식(홍콩증시에 상장된 중국기업 주식) 관련 거래를 핵심 수익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더딘 거래처 확보로 인해 삼성증권의 야심찬 구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현지 금융시장에서 성공한 황모씨를 구원투수로 영입, 총괄 부사장직을 맡겼다. 그는 2010년 8월부터 60명이던 인력을 단기간에 126명으로 늘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본사의 해외영업본부를 홍콩으로 이전하는 등 황 부사장에게 힘을 실어줬지만 결과적으로 패착이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서둘러 본궤도에 올려야 한다는 성급한 마음에 인력 스카우트시 2년간 고용을 보장하고 2년 내 퇴사하더라도 약정한 2년간의 급여를 보장하는 등 무리수가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그 결과 홍콩법인은 2010년 3800만달러, 2011년 5400만달러의 큰 적자를 냈다. 고정비를 상쇄할 수준의 수익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삼성증권은 결국 2011년 12월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손실 규모는 1억달러에 달했다.

◆경쟁국에 다 뺏긴 태국 시장

밀물처럼 진출했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후진적인 행태가 한국 금융회사에 대한 평판에 악영향을 미친 사례도 많다. 특히 태국시장의 경험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은행들은 1998년 외환위기 직후 앞다퉈 태국에서 철수했다. 반면 일본 등 경쟁국 은행들은 어렵지만 현지 시장을 지키면서 후일을 도모했다. “한국 은행들은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다 위기가 닥치면 인정사정없이 빠져나간다”는 인식이 태국 금융가에 퍼지는 건 당연했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철수했던 한국 은행들이 현지에 다시 사무소를 내기까지는 15년이 걸렸다. 태국에 진출한 국내 은행은 지난해 11월 방콕에 사무소를 낸 산업은행이 유일하다.

류시훈/박신영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