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에서 배운다] 국민소득 4만弗 도약…선진국의 5가지 '무기'
프랑스는 인구, 독일은 일자리에서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의 열쇠를 찾았다.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 사회적 대타협도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들의 ‘결정적 무기’였다. 반짝 인기에 기댄 일회성 정책이 아니었다. 근본적 변화를 위해선 국민의 인식 변화, 정부와 기업의 뼈를 깎는 혁신, 정치권의 지난한 토론과 화합이 필요했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 4만달러로 도약해야 할 한국이 바로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시나리오다. 한국경제신문이 의뢰해 현대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국민소득 4만달러 도약의 5가지 열쇠’를 정리했다.

프랑스의 인구전략

저출산 문제는 한국처럼 중진국 대열에 올라선 국가들이 마주치는 단골 문제다. 프랑스도 1980년대 이후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1993년 합계 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15~49세동안 낳는 평균 출생아수)이 1.65명까지 급락했다.

국가 존폐까지 위협받는 상황이 되자 프랑스 정부는 출산·육아 보조금과 세제혜택, 주택기금 등에 국내총생산(GDP)의 5% 넘게 투입했다. 프랑스의 출산율은 현재 2.01명으로 선진국 가운데 미국(2.1명) 다음으로 높다. 2004년 국민소득 3만달러, 2008년 4만달러로 도약하는 데는 저출산 극복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호주와 캐나다는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생산인구와 소비인구를 끌어올렸다.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은 “호주는 2000년대 초 보수당 정부가 이민과 저출산정책, 복지제도 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고성장의 바탕을 만들었다”며 “한국에선 북한의 생산인구를 활용하는 남북경협이 기회”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노동개혁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유럽의 병자’로 추락하는 듯했다. 막대한 재정 부담, 경상수지 적자, 실업자 양산 탓에 경제활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03년 슈뢰더 총리가 이끈 사회민주당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을 위한 ‘아젠다 2010’ ,즉 하르츠개혁을 꺼내들었다. 재계와 노동계가 참여한 하르츠위원회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고용 형태를 다양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특히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미니잡(시간제 일자리)’의 임금 차별을 완화, 경력 단절 여성들을 대거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였다.

하르츠개혁은 2005년 메르켈 총리의 기민당 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에도 꾸준히 추진됐다.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 독일이 경제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 여부도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등 ‘고용의 구조개혁’에 달려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미국의 융합전략

미국의 성장엔진이 지치지 않는 비결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혁신 능력에 있다. 수준 높은 고등교육 시스템은 세계의 두뇌들을 끌어들인다. 실리콘밸리 중심의 산학협력과 정보기술(IT) 클러스터는 1990년대 미국의 IT 호황을 이끌었다. 미국은 이후에도 항공과 바이오, 제약 등 첨단 제조업을 육성하며 고부가가치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김 실장은 “스웨덴과 독일 일본 등도 산·학·연 협력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끌어올렸다”며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등을 통한 ‘창조경제’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일본의 생산성 드라이브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가치가 급등하며 일본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까딱하면 수출기업 전체가 무너질 상황이었지만, 일본의 생존 전략은 치밀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생산공장을 미국과 일본으로 분리했으며, 도요타는 원가를 줄이고 노동효율을 높이기 위한 생산시스템 개혁을 진행했다. 1985~1991년 엔화가치가 두 배로 뛸 때 일본 기업의 수출가격은 약 20% 오르는 데 그쳤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92년 3만달러, 1995년 4만달러로 도약했다.

네덜란드의 대타협

지난해 말 코레일 파업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대결구도를 보여줬다. 공기업 개혁, 정년 연장 등 노사 갈등으로 해결 근처에도 못 간 현안이 산적하다. 청년실업과 재정문제 등 경제 전반의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1980년대 네덜란드도 그랬다. 만성적 실업과 경기침체를 뜻하는 ‘더치(네덜란드)병’에서 벗어난 계기는 1982년 사회적 대타협, 즉 ‘바세나르협약’이었다. 노조는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정부는 세금을 낮추며, 기업은 고용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일자리가 늘고 경제 활력이 붙기 시작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1991년)에서 3만달러(2003년)로 가는 데는 꽤 긴 시간이 걸렸지만, 3년 만에 4만달러까지 올라서며 ‘더치 미라클(기적)’을 만들었다.

김 실장은 “규제완화와 공공기관 개혁 등 개별 사안마다 노사가 갈등해서는 극한투쟁만 남는다”며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노사정위원회의 역할을 정상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