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경제를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경제를 순수히 경제문제로만 보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경제민주화, 복지, 공기업 문제 등 최근 불거진 경제 현안에 대해 “경제가 정치화되면 이념 논쟁으로 번져 사회적 갈등만 초래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성장 잠재력 확충이 시급하다”며 교육 의료 등 서비스 산업 활성화에 역점을 둘 것을 주문했다. 특히 “획일적인 교육 규제는 대학의 하향 평준화를 유도한다”며 ‘대학 자율화’를 강조했다. 정 총장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27일 연세대 총장실에서 진행됐다.

▷현재 경기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 올해가 작년보다는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노동 자본 등 가능한 생산요소를 투입해 물가상승 등의 부작용 없이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는 성장률·현 3.8% 내외) 수준까지 높아지는 건 당분간 어렵다. 특히 소비와 투자 부진, 고용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올해 정부가 역점을 둬야 할 경제정책 방향은.
“올해 몇% 성장하느냐보다 관심을 가질 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기반이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은 경기를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도 있고, 길게 보고 하는 것도 있다. 후자가 잠재성장기반 확충이다. 단기 성장률을 높이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통화정책을 놓고도 이견이 많다.

“지금은 통화총량이 부족한 게 아니라 유통이 안 돼 문제다. 원인이 어디 있는지 파악해 (신용정책과 같이) 선별적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은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궤도에 안착한 이후 해야 한다. (차기 한국은행 총재 하마평도 있는데?) 무슨, 총장 임기가 있는데….”

▷투자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모든 일은 시작부터 끝까지 자체 메커니즘 속에서 스스로 이뤄지는 ‘생태계’가 있다. 투자와 관련한 생태계를 보면 기업인이 우선 투자하려는 마음을 먹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구조적으로 기업인이 투자할 생각이 안 들게끔 돼 있다. 그 다음으로 경제 환경이 좋아지거나 규제 완화, 인센티브 등이 있어야 한다. 기업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이나 구조조정, 세무조사 등으로 인해 투자 활성화를 위한 초기 생태계가 무너진 상태다. 개별적 사유들이야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으로 기업 활동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공정거래나 동반성장 등 형평 지향적인 정책들로 기업 활동이 많은 규제를 받고 있다. 일시적 사회현상이나 여론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도 많다. 전반적으로 경제가 정치화되고 있다. 경제는 시장논리로 경제적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 경제가 정치화되면 이념 논쟁으로 번진다. 철도 파업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념논쟁으로 가버리면 사회적 갈등이 첨예화되고 이로 인해 큰 사회경제적 비용이 발생한다.”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서는.

“지배구조에 모범 답안이 있는 게 아니다. 지배구조는 일종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찾아가는 것이다. 하다 보니 ‘이게 좋다’라는 방식이다. 전문기업, 오너기업, 지주회사 체제 중 어느 곳은 이게 좋을 수 있고 또 다른 곳은 저게 좋을 수도 있다. 전문 경영인으로 망한 데도 많다. 정부는 개입을 안 하는 게 좋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기업 개혁을 어떻게 보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부에서 시장메커니즘이 몰락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정부나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논란이 확산됐다. 한국도 그쪽으로 많이 갔다. 그러면서 공공부문이 비대화됐다. 정부부채, 공공부문 부채가 심각해졌다. 공공부문 비중이 커지면 커질수록 비효율이 뒤따른다. 공공부문에는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공공부문 비대화를 경계해야 한다.”

▷정부도 규제 완화를 얘기하고 있긴 하다.

“대통령이나 정부 발표를 보면 규제가 많이 완화되는 것 같지만 국가경쟁력지수를 보면 오히려 나빠진 것으로 나온다. 실제 체감상으로는 여전히 규제가 안 풀리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나 국회에서 너무 앞서간 규제도 많다.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이나 몇 년 전 도입한 국제회계기준(IFRS)도 그랬다. 일관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외국제도 도입한다고 서두르는데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이를 상당한 불안요인이라고 토로한다.”

▷서비스산업 활성화 대책도 나오고 있는데.

“서비스산업 생산성은 제조업보다 상대적으로 낮아 잘만 하면 생산성과 부가가치가 높아질 여력이 많다. 아직 의료, 관광, 교육, 소프트웨어, 금융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돈을 안 풀어서가 아니라 규제 때문이다. 정부도 규제를 풀려고 하지만 국회 내 이념논쟁, 이익단체의 벽에 걸려 있다. 정부가 국민에게 정책을 홍보하고 설득해가야 한다.”

▷올해 복지예산이 처음 100조원을 넘어섰는데.

“복지를 너무 인기지향적, 인기영합적으로 해 보편적으로 흐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보편적 복지를 접고 선별적·선택적으로 가면 재원을 많이 줄일 수 있다. 공약에 대한 신뢰도 중요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보편적 복지를 달성하는 시점을 뒤로 미루고 조정해야 한다. 특히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는 경제 활성화와 서로 상충하는 정책이다.”

▷교육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하나.

“우리 경제 수준이면 세계 100대 대학 내 10개는 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학 정책을 보면 대부분 획일적인 규제로 둘러싸여 있다. 경쟁력 있는 대학이나 없는 대학이나 똑같이 규제한다. 등록금 지원도 보편·형평적인 정책이다. 이런 것들은 대학의 하향 평준화를 유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교육 전체의 경쟁력을 끌어내린다.”

▷대학 운영을 자율화하면 등록금이 오르고 계층 간 격차가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는데.

“동의할 수 없다. 경쟁력 향상을 위해선 반드시 자율화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등록금도 올려야 한다. 대신 자율화된 대학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가계 연소득 6만달러 미만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주고 있다. 연세대도 가계 소득하위 30%에 속하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반값 등록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반값 등록금 정책은 속도를 조정해야 한다. 장기적인 성장 기반 확충을 위해서는 숫자는 적어도 경쟁력 있고 전문성 있는 인재들이 필요하다. 보편적 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이 그다지 많이 필요하지 않다. 정부는 지난해 예산이 빠듯한 가운데서도 등록금 지원에만 2조8000억원을 썼다. 하지만 대학원생에 연구 예산을 지원하는 BK(두뇌한국)21 연간 예산은 2500억원 정도로 10%에 불과하다. 등록금 지원 확대는 대학 구조조정하고도 앞뒤가 안 맞는다.”

▷교육자로서, 또 경제학자로서 한국 사회에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무엇인가.

“신뢰 기반이 무너졌다.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는다. 대통령이 ‘철도 민영화 안 하겠다’고 해도 안 믿는다. 과거에는 인적자본, 물적자본만 있으면 경제발전하는 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거기에 하나 더 있어야 한다. 제3자본, 사회적 자본이다. 사회적 자본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과 기업, 정부 등 사회주체를 협력적인 관계로 연결하는 무형의 자본이다.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는 경제활동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최근에는 비용을 넘어 엄청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사회 갈등을 줄이기 위한 방안은.

“갈등을 해소하려면 시간이 걸려도 신뢰 기반을 회복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법치를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줘야 한다. 헌법 위에 ‘떼법’을 두면 안 된다. 정책의 일관성도 유지해야 한다. 말한 건 약속을 지키고 장관이나 정부가 바뀌었다고 변해선 안 된다. 기업과 노조도 신뢰 기반 형성에 애써야 한다.”

■ 정갑영 총장은 국내 산업조직 분야 대가…대학교육 혁신 방향 제시

정갑영 총장은 국내 산업조직 분야의 대가로 최근에는 대학교육 혁신을 위해 애쓰고 있다.

1951년 전북 김제 출신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부터 연세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교무처장, 원주캠퍼스 부총장을 거쳐 2011년 2월 총장에 올랐다. 현재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과 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금융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1년 국내 산업조직에 대한 체계적인 실증분석을 주도한 공로로 제30회 다산경제학상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한국 고등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실현한 점을 인정받아 ‘자랑스런 한국인’ 최고대상을 수상했다.

△전북 김제(63)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석사,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 △연세대 교수 △연세대 교무처장, 원주캠퍼스 부총장 △자유기업원 이사장 △연세대 총장 △국민경제자문회의 거시금융분과위원장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