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연매출 1조원을 넘나들던 태산엘시디가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은 26일 채권단의 동의를 얻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중인 태산엘시디가 법원에 파산 신청을 낼 것을 요구했다. 태산엘시디는 27일 이사회를 열고 파산 신청 건을 처리할 예정이다. 태산엘시디는 2008년 통화옵션 상품인 ‘키코(KIKO)’ 사태가 터졌을 당시 대표적인 피해 기업이다. 이후 출자 전환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 조짐을 보이기도 했지만 결국 파산이라는 비운을 맞게 됐다.

○하나은행 ‘파산 신청’ 결정

'키코 후유증'…태산LCD, 결국 몰락
전체 채권 및 지분을 합해 산정한 의결권 중 60.8%를 갖고 있는 하나은행은 다른 채권은행들의 동의를 얻어 파산신청에 필요한 의결권 75%를 확보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태산엘시디와 같이 워크아웃 중인 기업에 대해 파산 신청을 하려면 의결권 중 75% 이상을 얻어야 한다.

하나은행의 이 같은 결정은 태산엘시디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인수합병(M&A)이 일부 채권은행의 반대로 최근 무산되면서 회생 가능성이 희박해졌다고 판단해서다. 키코 사태로 흑자 도산해 2008년 10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태산엘시디는 자구 노력을 지속했지만 부채와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다. 올 들어서도 3분기까지 310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태산엘시디는 분기보고서에서 “주문 물량 급감에 따른 중국 부문 매출 감소와 국내 생산 중단 등으로 매출이 크게 감소했고 주요 거래처에 납품하는 TV BLU 및 LCM(LCD 모듈) 등 물량이 급감해 거래가 중단됨에 따라 매출 감소는 더 가속화됐다”고 밝혔다. 채권단의 파산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파산 선고가 내려지면 파산관재인이 회사 자산을 정리해 채권자들에 나눠 주게 된다.

○끝내 극복 못한 키코의 그림자

태산엘시디의 파산 신청은 그릇된 리스크 전략이 회사를 공중 분해시킨 안타까운 사례라는 평가다. 태산엘시디는 LCD용 백라이트유닛(BLU)을 생산하는 업체로 한때 매출이 연 1조원을 넘나드는 우량 중견기업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당시 통화 관련 파생상품 키코에 가입한 영향으로 무려 8000억원의 손실을 입으면서 비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키코는 녹인 녹아웃(knock-in, knock-out)의 약자로 수출업체들이 환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환차손을 막기 위해 은행과 거래하는 파생상품의 한 종류다. 환율이 미리 정한 범위 안에서 움직이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지만, 범위를 넘어서면 큰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당시 태산엘시디는 키코 손실을 극복하기 위해 ‘피봇(PIVOT)’ ‘스노볼(snowball)’ 등과 같은 통화옵션 상품에도 가입해 손실 규모를 더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태산엘시디는 한때 회생 가능성이 보이기도 했다. 2009년 말 은행권이 4754억원 규모의 출자 전환을 했고 주거래처인 삼성전자가 협력 관계를 지속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전방위 지원에도 좀처럼 부채를 줄이지 못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태산엘시디에 2009~2010년 4339억원을 출자 전환했지만 이 모든 금액을 전액 손실 처리할 정도로 수익구조가 악화됐다”고 말했다.

박신영/김일규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