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물이자 기피 대상인 뱀의 이중성처럼 2013년 계사년(癸巳年)은 국내 기업들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다. 하지만 신기루 같은 기회를 잡기엔 위기의 풍랑이 너무나 거셌다. 많은 기업이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실적 부진과 주가 하락을 견뎌야 했다. 눈물을 머금고 회사를 팔아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아예 해체 수순을 밟게 된 대기업도 있다.

그럼에도 올해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은 기업도 있다. 적자에서 흑자로 탈바꿈했거나 성장성을 증명하면서 주가가 두 배 넘게 뛴 곳이 대표적이다. 구조조정 속에 승진의 기쁨을 누린 최고경영자(CEO)들도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2013년 허리 쭉 편 기업, CEO '승부수' 먹혀

SK하이닉스, 악재를 호재로

국내 주요 300대 기업 중 올해 가장 빼어난 실적을 낸 상장사는 SK하이닉스다. 이 회사는 작년엔 227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을 만큼 어려웠다. 몇 년 동안 흑자와 적자를 오가며 주춤하던 이 회사는 올 들어 단박에 날아올랐다. 지난 1분기 317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데 이어 2분기와 3분기에 잇달아 사상 최대인 1조원대 이익을 기록했다. 3분기까지 누적 이익만 2조5950억원에 달한다.

올 들어 미국 마이크론이 일본 엘피다 합병을 마무리하면서 세계 메모리 반도체 업체가 3~4개로 정리된 게 실적 개선의 가장 큰 요인이다. 지난 9월 중국 우시 공장에 불이 난 것도 오히려 호재가 됐다. 세계 D램의 15%가량을 생산하는 이 공장이 멈추자 D램값은 폭등했다. 자연스레 D램 비중이 높은 SK하이닉스는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았다. 주가도 올 들어 43%나 올랐다.

쌍용자동차도 올해 희망의 빛을 봤다. 2007년 3분기부터 6년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2분기에 37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3분기에도 7억원을 벌며 연속 흑자를 유지했다. 이유일 쌍용차 사장은 “4분기에도 흑자를 기록해 올해 전체적으로 수십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쌍용차는 노사 협력을 통해 부활의 날개를 달았다. 지난 8월 국내 자동차 업계가 파업으로 진통을 겪을 때 이 회사 노사는 4년 연속 분규 없이 임금협상을 타결하며 끈끈한 협력관계를 이어갔다.

○주가 급등한 기업은 어디

올해 코스피지수는 제자리걸음이었지만 300대 기업 중 주가가 폭등한 상장사도 있다. 대부분 인수합병(M&A) 때문이었지만 네이버는 예외다. 모바일메신저 라인의 선전으로 네이버 주가는 올 들어 228%나 뛰었다. NHN이 지난 8월 네이버와 NHN엔터테인먼트로 분할 상장한 뒤 네이버 주가만 올랐다.

GS홈쇼핑 주가도 수직 상승했다. 연초 15만2500원이던 주가는 29만2500원으로 92%나 급등했다. 성장세인 모바일 쇼핑 시장의 최강자로 떠오른 덕분이라는 분석이다.

LG하우시스 역시 승승장구하고 있다. 3분기까지 작년 전체 이익의 2.3배인 1054억원을 벌었다. 주가도 두 배 가까이 뛰어 14만원대 안팎을 지키고 있다.

공작기계와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현대위아도 올해 사상 최고가를 새로 썼다. 지난달 21일 20만500원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20만원 선을 넘었다. 산업용 기계회사에서 자동차 부품회사로 성공적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LG이노텍도 올해 이익 규모를 작년보다 50% 이상 늘렸다. 덕분에 이 회사 이웅범 대표는 연말 인사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정인설/최진석/배석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