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진 기자 ] 불공정 거래 혐의를 받아 온 '공룡포털' 네이버와 다음이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받기 직전 내놓은 묘수, '동의의결'이 통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의의결제를 수용함에 따라 네이버와 다음은 자발적인 시정조치를 통해 자존심을 지키게 됐다.

네이버가 꺼낸 '히든카드' 동의의결이 뭐길래…
28일 공정위에 따르면, 네이버와 다음이 신청한 동의의결을 받아들인 것은 지난 20011년 11월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이다.

동의의결은 사업자가 시정방안을 제시하고 규제 기관이 그 타당성을 인정하는 경우 위법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동의의결제가 생소하지만,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는 IT(정보기술) 분야에서 불법행위가 일어났을 경우 적극 활용하고 있다. 동의의결 제도의 모태가 되는 유럽의 경우 2009년 마이크로소프트사건에 이를 적용했다.

유럽규제당국은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운영체제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인터넷 익스플로어 브라우저를 끼워팔기한 혐의에 관해 조사했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용자들의 웹브라우저 선택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자진 시정안을 제시했고, 동의의결로 사건이 종결됐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이후 자진 시정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유럽규제당국으로부터 5억6000만유로(당시 약 79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2007년에는 미국 반도체기업 램버스가 반독점 규제 위반사실로 유럽규제당국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보유한 특허를 바탕으로 부당한 특허 로열티를 요구했는지 여부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이에 램버스는 로열티를 합당한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내용의 시정안을 제출했고, 유럽규제당국은 동의의결 절차에 따라 해결했다.

애플과 구글도 동의의결제를 적극 활용했다. 지난해 애플과 하퍼콜린스, 펭귄과 같은 국제적인 출판사들은 전자책을 판매하면서 카르텔을 형성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애플과 각 출판사는 이에 따른 시정안을 제시했고, 올해까지 두 차례에 걸친 시장 테스크와 여론 수렴을 통해 최종 시정안을 확정했다.

구글은 자사 쇼핑, 뉴스 등 전문검색 서비스 결과를 유리한 위치에 노출시켜 검색을 왜곡했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자진 시정방안을 내놓으면서 미국 경쟁당국인 FTC(연방거래위원회)의 제재를 피했다.

네이버와 다음도 이번 동의의결을 신청하면서 "해외 경쟁당국은 같은 내용에서 무혐의로 판단하거나 자진시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며 "구글 등 외국 사업자가 이번 조치대상에서 제외, 역차별로 국내 사업자들의 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공정위가 동의의결제를 처음 받아들인 만큼, 향후 네이버와 다음이 내놓을 자진시정 방안이 중요해질 전망이다. 네이버와 다음은 앞으로 1개월 동안 잠정 동의안을 작성해 제출해야 하며, 잠정안이 결정되면 이해관계자와 관계 부처, 검찰총장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철호 공정위 상임위원은 전날 전원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네이버와 다음이) 직접 피해는 물론 간접 피해를 구제할 방안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그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 심의 절차를 시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지난 5월부터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업체들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벌여왔다. 검색 광고와 정보가 혼동되는 점과 중소기업과의 부당거래,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줬는지 여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어졌다.

공정위는 전날 이에 대한 제재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었고, 업계에서는 네이버에 수백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네이버와 다음이 기습적으로 신청한 동의 의결을 받아들이기로 함에 따라 스스로 시정 방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줬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