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취지의 ‘금융 비전’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2003년 12월 발표한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 전략’이다. ‘홍콩·싱가포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시아 3대 금융허브를 한국에 조성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구상 중에는 ‘2007년까지 금융법 체계를 포괄식(금지 항목을 제외하고 모두 허용) 시스템으로 개편해 시장 친화적 규제 체계를 완비하겠다’는 내용 등 적극적인 것이 많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매우 더디게 나타났고 구호에 비해 초라했다. 한국투자공사(KIC) 설립(2005년), 자본시장통합법 제정(2007년), 서울·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2009년)한 정도다. 자본시장통합법은 첫 구상이 나온 뒤 4년이나 지나서 국회를 통과했고, 한국형 헤지펀드는 2011년에야 허용됐다.

꼭 10년이 지난 지금 발표된 금융 비전에도 자본시장의 역동성 제고, 경쟁 제한 규제 정비, 장기채 시장 육성, 금융 국제화 인프라 구축 등 비슷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정부는 과거 비전들과 이번 금융 비전은 다르다고 항변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과거에는 정부가 목표를 제시했지만 이번에는 68차례 간담회를 거쳐 집대성한 금융권 스스로의 비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번에도 ‘요란한 빈 수레’가 될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규제완화를 주장해 놓고 막상 뜯어보면 규제 강화 내용들이 적잖이 담겨 있다는 지적도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거창한 목표를 제시하고 막상 실행할 때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며 좌고우면하기 때문에 용두사미가 되고, 실제 규제완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