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실패해놓고 국민에 부담 떠안기기' 비판도
요금 지속인상 가능성…송전선로 등 사회적 비용도 반영


정부가 19일 발표한 전기요금 인상 및 에너지가격 체계 개편안은 매년 여름·겨울철에 되풀이되는 전력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메스를 들이댄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나라의 전기 소비 수준이 주요 경쟁국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전력 소비 증가 속도가 예측치를 훨씬 초과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9·15 대정전(순환정전)을 경험한 이후 전력당국이 매년 설비증설과 수요관리에 나서고 있지만, 올해도 지난 8월 12~14일 사상 최악의 전력대란이 우려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가 잇따랐다.

그러나 전력당국은 거듭된 수요예측 실패와 원전 비리로 인한 설비 가동 중단사태로 전력난을 초래해 놓고도 결국 전력 소비자인 국민에게 부담을 떠안기는 방식으로 문제의 해법을 찾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여기다 용도별 요금 중 산업용을 6.4%로 가장 많이 올려 산업계에서는 경쟁력 저하와 경영난 가중 등 극도의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절전대책에 따른 여름철 조업 차질에다 요금 인상이 겹쳐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전경련에서 주장하듯이 산업용 전기요금 원가회수율이 100%를 이미 넘어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산업용 원가회수율은 90%대 중반이며, 인상을 통해 원가회수율이 높아지지만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면 100%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특히 정부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에너지 상대가격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혀 전기요금은 향후 추가 인상될 가능성도 있다.

전력당국 입장에서는 밀양 송전탑 사태 등에서 보듯이 원전이나 송전선로의 주민 수용성 확보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도 설비증설만으로 전력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도달하게 했다.

또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100조원이 넘은 한국전력과 발전사의 천문학적인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했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최근 3년간 무려 5차례나 전기요금을 조정한 데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조정한 인상률이 가장 높아 올여름 기록적인 무더위 속에서 절전에 동참하느라 가뜩이나 지친 국민의 '전력 소비 피로감'을 가중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 전기 소비추세 뭐가 문제인가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전기 소비 수준은 1달러당 497Wh(2011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1달러당 267Wh)보다 70% 이상 높다.

전기 소비 증가율은 2008년 4.5%, 2009년 2.4%, 2010년 10.1%, 2011년 4.8%, 2012년 2.5%에 달했다.

누적 증가율은 19.3%다.

애초 2006년에 25년 후인 2030년 전체 에너지에서 전기의 비중을 21%로 예측했으나 2012년에 이미 19%에 도달했다.

20년 가까이 빠른 증가세다.

반면 주요 선진국의 5년간 전기 소비 증가율은 일본 -4.6%, 미국 -1.9%, 독일 -2.7% 등으로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다.

2000년대 후반부터 다른 에너지 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기요금을 최소 수준 인상으로 유지하면서 유류·가스 소비가 전기로 옮겨가는 추세도 나타났다.

2005~2012년 전기 가격 증가율은 33%인데 등유, 도시가스는 각각 60%, 75% 올랐다.

반면 같은 기간 소비 증가율은 전기가 40%인데 비해 등유는 오히려 44% 줄었고, 도시가스는 7% 증가에 그쳤다.

중앙집중식으로 가스냉방을 하던 대형건물이 에어컨을 설치하고 전기냉방으로 바꾸고 면세유를 쓰던 비닐하우스 난방을 전기보일러로 교체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웬만한 규모로는 유류 자가발전시설보다는 전력회사에서 전기를 직접 공급받는 게 싸다는 중소기업들의 분석도 있다.

◇ 요금인상·세율조정 만으론 한계…수요관리 시장 열려야
전기와 다른 에너지(LNG·등유)와의 상대가격 차이를 좁히기 위해 발전용 유연탄에 ㎏당 21원(탄력세율 적용)의 세율을 적용하는 등 에너지 상대가격 체계를 개편했다.

전기에만 과도하게 집중되는 소비 추이를 세금 해법을 통해 방향 전환하겠다는 시도다.

대규모 사업장의 피크시간대 요금을 경부하시간대(야간시간대)의 5배로 높이는 등 선택형 요금제를 확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 차관은 "전기와 다른 에너지의 상대가격은 상당히 왜곡돼 있다.

향후 상대가격 조정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전선로 건설이나 원전 안전성 강화,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합리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게 요금 인상의 배경이다.

그러나 요금인상과 세율조정만으로는 전력다소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력업계와 학계에서는 ICT(정보통신기술)를 활용한 ESS(에너지저장장치)의 혁신 등으로 본격적인 전력수요관리 시장이 열려야 전력난 해소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ESS와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 등 전력 관련 ICT 산업은 정부의 기대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지 않다는 게 전력업계의 평가다.

신재생에너지 등 다른 발전 공급원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대기업들로부터 ESS나 EMS(에너지관리시스템) 등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이끌어내려면 수요자원시장에서 투자를 회수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한 차관은 "요금체계 개편에 따른 투자효과를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시장 메커니즘에 의해 (수요관리 시스템을) 돌릴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 옥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