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 변동 위험을 헤지하는 파생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 피해를 본 한국 중소기업이 미국 뉴욕에서 글로벌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환헤지 상품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본 기업이면 누구나 원고 자격을 가질 수 있어 한국 중소기업과 글로벌 금융회사 간의 대규모 소송전으로 확대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로펌인 김앤배에 따르면 전자부품업체 심텍은 바클레이즈, 씨티그룹,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치뱅크, JP모간체이스, 내셔널어소시에이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UBS 등을 상대로 뉴욕주 남부지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은행 트레이더들이 담합을 통해 외환시장의 대표적 지표인 WM/로이터 기준환율을 조작, 자사의 배를 채우는 한편 고객사에 큰 피해를 줬다는 것이 심텍 측의 주장이다. WM/로이터 기준환율은 원화를 포함해 국제 거래에 쓰이는 159개 통화의 시간별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심텍은 지난 7월 씨티그룹 미국 본사를 상대로 키코 가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한국씨티은행 창구를 통해 가입했지만 키코 상품을 개발하고 이득을 챙긴 건 씨티그룹 본사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각국 수사당국이 최근 씨티그룹을 포함한 대형 은행 트레이더들이 담합을 통해 기준환율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잡고 조사에 착수하자 집단소송으로 전선을 확대한 것으로 풀이된다. 심텍과는 별도로 미국 매사추세츠주 헤이버힐 퇴직연금도 이들 은행을 상대로 비슷한 집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홍콩 스위스 등 각국 수사당국과 금융당국은 이들 은행 일부 트레이더가 ‘더 카르텔’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채팅방을 만들어 WM/로이터 환율을 조작하고 부당이익을 챙겼다고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에릭 홀더 미국 법무부 장관은 “현재까지 우리가 확보한 환율 조작 혐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이번 조사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