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제·유상부·이구택 전 회장에 이어 정준양 회장까지 네번째

포스코는 정준양 회장이 15일 이사회 의장에게 사의를 표명하면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수가 중도 하차하는 악습을 답습하게 됐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포스코 회장이 중도 사임한 사례는 이번이 네 번째다.

1994년 3월 포스코 회장직에 오른 김만제 전 회장은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1998년 3월 자진 사임했고 김 전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유상부 전 회장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3월 재선임이 유력한 상황에서 스스로 자리를 떠났다.

그 직후 취임한 이구택 전 회장은 2007년 봄 한차례 연임했으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1년 뒤인 2009년 초 정치권 외압 논란 와중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 전 회장의 경우 2008년 말부터 검찰이 이주성 전 국세청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포스코가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했다는 혐의를 잡고 수사에 나섬에 따라 결국 사퇴 수순을 밟았다.

이 전 회장은 "외압이나 외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문경영인과 사외이사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불식시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정권 차원의 외압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정 회장도 이날 사의 표명 배경에 외압이나 외풍은 없었다는 점을 밝혔지만 이 전 회장과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고 볼 수 있다.

그는 2009년 2월 회장에 취임한 뒤 작년 3월 연임에 성공해 임기를 1년 4개월가량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지난 6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때 국빈만찬 초청자 명단에서 빠진 데 이어 10대 그룹 총수 청와대 오찬 명단, 베트남 국빈방문 사절단 명단에서 잇따라 제외되자 거취를 둘러싼 뒷말이 무성했다.

이런 와중에 국세청이 지난 9월 초 서울 포스코센터, 포항 본사, 광양제철소 등에 대한 동시다발적 세무조사에 착수하자 정 회장 사퇴 압박용이 아니냐는 관측이 강하게 나돌았다.

KT 이석채 회장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도 정 회장에게 상당한 압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KT 이 회장은 검찰수사를 받게 되자 지난 3일 이사회에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시했다.

급기야 이달 초 "정 회장이 최근 청와대에 더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나오면서 업계에서는 사실상 정 회장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유 여하를 떠나 100% 민영화된 회사의 총수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사퇴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기준으로 포스코 지분 구조를 보면 소액주주가 60.52%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뉴욕 멜론은행이 15.02%, 국민연금공단 6.14%, 우리사주조합 1.83% 등이다.

경기도 수원 태생으로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1975년 포항종합제철에 입사한 뒤 30년간 '철강맨'으로 지냈다.

제강기술과장, 제강 부장, 생산기술 부장 등을 거쳐 2002년 입사 27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2007년 사장 자리에 오르는 등 고속 승진의 길을 달렸다.

엔지니어 출신으로는 드물게 글로벌 마인드에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강력한 업무 추진과 신속한 의사결정 능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주목받는 고급 자동차강판의 국산화를 주도하는 한편 고탄소강재, 자동차용 고급선재, 고기능 냉연제품 등 전략 제품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국내 철강 전후방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일조했다는 평가도 따른다.

다만 최근에는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 중국발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 실적이 부진에 빠지는 등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lu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