造船은 불황 탈출…해운은 아직 '허우적'
국내 컨테이너 해운사들이 11월부터 일제히 운임을 올린다. 수주 봇물이 터진 조선업과 달리 해운 업황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조금이나마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선사들은 신규 투자를 못 하고 있어 시장이 살아나도 소외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31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11월부터 구주(유럽) 지역인 지중해·북유럽 노선의 운임을 TEU(20피트 컨테이너 1개)당 800~850달러 인상키로 했다. 미주 지역에 대해서도 서부와 동부 해안 모두 FEU(40피트 컨테이너 1개)당 가격을 400달러씩 올린다. 한진해운도 유럽은 TEU당 900달러, 미주는 FEU당 400달러가량 각각 더 받기로 했다.

造船은 불황 탈출…해운은 아직 '허우적'

○깨진 조선·해운 업황 동조화

해운 업계에서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등에 쓸 제품을 실어나르는 여름이 성수기다. 성수기가 지난 지금 운임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그만큼 실적 개선이 급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불황으로 국내 대표 벌크선사인 STX팬오션대한해운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국내 1, 2위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2010년 이후 3년 연속 대규모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

조선사들의 수주가 크게 늘어난 올해도 실적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과거 해운 시황은 조선 경기에 연동됐다. 물동량이 증가해 해운 경기가 좋아지면 선박 발주가 늘어나 조선업이 살아나는 구조였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조선업만 홀로 회복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당장은 해운사들에 공급되는 선박들이 너무 많아 운임이 잘 오르지 않고 있다”며 “조선 수주 증가는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은 조선업에 선제적인 투자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선박을 인도받는 2, 3년 후 해운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보고 가격이 싼 지금 건조 주문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박 발주가 늘어난 것은 현재 해운 업황과 큰 관계가 없다”며 “조선 수주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단하기 힘든 이유도 해운업이 여전히 침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황 살아나도 한국 해운사는 문제

해운 업황이 최악의 시기는 지났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모펀드가 올 들어 전 세계 해운회사에 투자한 금액이 27억달러를 넘어서 지난해 전체 수치(19억달러)보다 많다고 최근 보도했다. FT는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불황에 처했던 해운업계가 바닥에서 탈출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전했다. 박은경 삼성증권 연구원은 “공급 쪽 구조조정이 마무리되지 않은 게 가장 큰 걸림돌이지만 해운 경기는 아주 완만하게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2008년 연평균 1133이던 컨테이너선운임지수(HRCI)는 지난해 477까지 떨어졌다가 올 들어 지난 8월 500선을 회복했다.

문제는 시황이 살아나도 한국 해운사들은 수혜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진해운은 최근 같은 한진그룹 계열인 대한항공으로부터 1500억원을 긴급 지원받을 만큼 재무 상황이 좋지 않다. 현대상선도 정부 지원을 받아 만기 회사채를 상환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규 투자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국내 최대 선사인 한진해운은 지난해에 이어 올 들어서도 아직까지 단 한 척의 신조선 발주(새로운 선박 주문)도 못 하고 있다. 머스크라인 등 글로벌 선사들이 한국 조선사들에 고효율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발주할 때 구경만 하고 있는 형국이다.

황영식 한국선주협회 기획조사팀 이사는 “오랜 기간 영업망과 운항 노하우를 쌓아온 대형 국적선사를 다시 만들려면 수많은 자금과 시간이 들어간다”며 “중국 일본 독일 등과 같이 한국 정부도 기간 산업인 해운업을 더 적극적으로 살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