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음바다 뒤로하고… > 북극항로 항해의 최대 장애물은 얼음바다였다. 지난 5일 스테나폴라리스호(號)의 발목을 잡은 얼음바다 모습. 북극해=신경훈 기자
< 얼음바다 뒤로하고… > 북극항로 항해의 최대 장애물은 얼음바다였다. 지난 5일 스테나폴라리스호(號)의 발목을 잡은 얼음바다 모습. 북극해=신경훈 기자
“물빛만 봐도 동해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국적선 사상 최초로 북극항로 운항에 나선 스테나폴라리스호(號)가 베링해협을 지나 동해에 들어선 19일. 젊은 시절 10년간 항해 경험이 있는 남청도 해양대 교수는 유난히 푸른 바다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목적지인 광양항까지는 이틀 남았다. 스테나폴라리스는 광양항에 도착한다. 지난 9월16일 밤 러시아 우스트루가를 떠난 지 35일 만이다. 바스코 알렉산더 선장은 “올해는 작년보다 해빙(海氷) 양이 늘어난 데다 쇄빙선 일정에 차질이 생겨 예상보다 약간 늦어졌다”며 “그래도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북유럽~한국) 노선에 비해 8일 정도 운항일수를 줄였다”고 했다.

남 교수는 이번 북극항로 시범운항의 성과에 대해 “전체적으로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항로에 비해 20만달러 정도 적게 들어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정도면 경제성이 충분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승헌 현대글로비스 해기사는 “북극항로는 1만5500㎞ 정도로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항로보다 7000㎞나 짧아 연료비가 30만달러 정도 덜 들어간다”며 “하지만 쇄빙선료와 아이스파일럿비 등을 통행료로 내야 하고 (사고 위험에 대비한) 보험료도 훨씬 높기 때문에 이 부분을 얼마나 줄이느냐가 북극항로의 경제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극항로 통행료에 대해 패트릭 스반 스테나해운 매니저는 “스테나해운의 북극항로 운항 실적이 많아 이번 통행료는 t당 5달러를 적용해 총 20만달러 정도 들었다”며 “하지만 운항실적이 없는 선사는 훨씬 비싼 비용을 내야 한다”고 했다.

남 교수는 “선사의 운항실적 등 복잡한 규정에 따라 통행료가 달라지는 현재의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극항로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쇄빙선 운항시스템은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남 교수는 “쇄빙선이 당초 만나기로 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 사나흘씩 기다려야 하는 현실은 북극항로 활성화의 장애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스반 매니저는 “여름철 서너 달은 항해가 안전하고 경제성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해빙 등의 변수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 (컨테이너선보다) 벌크선 위주로 운항이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9월23일 북극권에 들어선 스테나폴라리스는 9월30일 처음 해빙구간(얼음바다)에 들어섰다. 쇄빙선을 기다리느라 북극해 한가운데에서 발이 묶이기도 했다.

총 390㎞에 달하는 얼음바다에선 항해 속도를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줄여야 했다. 가끔 얼음이 선체에 부닥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위협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11일 베링해로 들어선 뒤부터 다시 속도를 높였다. 그동안 제대로 누리지 못한 햇빛이 갑판 위에 쏟아졌다. 남 교수가 일렁이는 물결을 내려다보며 읊조렸다. “북극항로를 단순히 바닷길 하나가 새로 열리는 정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북극권이 열리며 새로 생겨나는 세계 질서 속으로 가는 ‘21세기의 비단길’이 아닐까요.”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