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 내년 여름 준공을 앞둔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3~4호기의 케이블을 전면 교체한다고 발표했다.

케이블 재검증 과정에서 성능시험의 예비고사 격인 화염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교체대상 케이블은 총 900km에 달한다고 한다.

아파트 배선을 다 뜯어내고 다시 까는 것과 같은 대공사여서 한수원도 작업 완료 시기를 기약하지 못했다.

업계의 예상기간은 짧으면 1년, 길면 2년이라고 한다.

준공시기는 그만큼 늦춰진다.

온몸으로 삼복더위를 견디는 고통은 내년에도 불 보듯 뻔하다.

내년 겨울엔 옷을 덧껴입고 한파에 떨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참고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

이젠 분노를 넘어 허탈감을 느낄 정도다.

그나마 가동 전에 문제점을 발견한 게 천만다행이라고 위안해본다.

하지만 그냥 넘길 일은 아니다.

품질검사와 납품과정에 어떤 구멍이 있었는지 다시 한 번 꼼꼼히 따져야 재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케이블은 국내업체인 JS전선에서 납품했다.

위조한 시험성적서로 제어케이블을 납품한 사실이 밝혀져 가동 중인 원전을 멈춰서게 만든 곳이다.

이 회사는 최근 9년간 76건의 납품계약을 맺고 원전에 472억원 어치의 부품을 공급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다른 부품도 안심할 수 없다.

실제 정부가 원전 부품 품질서류를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100건 중 1건 꼴로 위조됐다.

전수조사가 끝나지 않은 품질서류도 5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엉터리 핵심부품이 더 있다면 정부는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체작업을 서둘러야 마땅하다.

조사대상에서 누락된 부품이 있는지 살피는 노력도 필요하다.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지도 짚어봐야 한다.

정부는 원전비리 재발방지 대책에서 제3의 기관이 품질서류의 위조 여부를 검증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품질관리 강화안을 내놨지만, 그것으로 충분할지는 미지수다.

제3의 기관의 검증이 서류로만 이뤄진다면 성능시험 부실을 가려내는 게 어려워서다.

신고리 3~4호기의 케이블도 성능시험 자체를 엉터리로 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복수의 기관에 맡기는 방안도 검토해 보기를 바란다.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 불편도 불편이지만 준공 지연에 따른 피해액도 3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원전비리 수사로 100명이 기소됐지만 정부에 관리감독 책임이 없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비리의 뿌리를 뽑아내고 원전마피아 문화를 일신하지 않고서는 부실성능시험→품질서류위조→원전정지→전력난의 악순환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이들 원전의 공백을 메울 수급계획도 다시 짜야 한다.

신고리 3~4호기가 만든 전력을 보내는 통로인 밀양송전탑 공사를 놓고도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짚고 넘어갈 사항은 이번 케이블 부실을 일찌감치 확인하고도 이달초 송전탑 공사 강행 이후에야 교체방침을 발표한 것인지에 대한 의혹이다.

실제 미리 문제를 확인했을 만한 정황들은 있었다.

원전비리 수사에서 열노화 처리를 하지 않고 열풍기로 표면만 그을린 '생 케이블'을 국외 검증업체에 보내 합격판정을 받았다는 내용이 드러난 게 지난 6월이다.

그래서 이번 재검증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을 것이란 예상도 많았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하는 정부가 쉬쉬했을 리는 없다고 믿고 싶다.

재시험 결과가 확정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본다.

하지만 송전탑 공사에 급급한 나머지 뒤늦게 전면 교체를 발표했다면 또다른 차원의 신뢰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송전탑 공사의 계속 방침을 강조하기에 앞서 케이블 재시험 과정을 명확히 공개하고 설명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