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9주년 - 기로에 선 신흥국 20억 시장을 가다] 세계의 공장을 꿈꾼다
“당신은 미국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여권과 비자를 제시하십시오.”

멕시코 변방도시 레이노사 공항에서 미국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도착하기까지는 자동차로 8분이 채 안 걸렸다. 20분 이상 가야 하는 레이노사 도심보다 미국이 더 가까운 셈이다. 마침 국경에는 레이노사에서 그날 근무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 기업 직원들의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처럼 거주지는 미국에, 근무지는 레이노사에 있는 외국인은 4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간단한 신분 확인을 거쳐 진입한 텍사스주 매캘런에는 반대로 멕시코로 향하는 퇴근 행렬이 장관을 이뤘다. 매캘런에 외국 주재원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이 발달하면서 식당 종업원이나 청소부 등으로 일하는 멕시코인들이 일을 끝내고 ‘귀국’하는 것이다.

레이노사~매캘런 간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화물 총량은 연간 40억달러(약 4조3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재료를 수입해 전자제품을 만든 뒤 다시 미국으로 수출하는 가공무역이 발달한 레이노사는 인구 70만명의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미국과 근접한 지정학적 장점이 멕시코 경제에 가져다주는 긍정적 효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멕시코 레이노사에서 미국 매캘런으로 퇴근하는 차량들이 지난달 26일 국경 검문소 앞을 가둑 채우고 있다. 레이노사투자청
멕시코 레이노사에서 미국 매캘런으로 퇴근하는 차량들이 지난달 26일 국경 검문소 앞을 가둑 채우고 있다. 레이노사투자청
중국 임금 상승에 부활하는 마킬라도라


해외시장을 겨냥한 보세가공업을 일컫는 ‘마킬라도라’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국에 다시 수출하는 조건으로 원자재 수입의 관세를 면제해주면서 크게 번성했다. 1994년 멕시코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가입으로 관련 산업은 더욱 발달했다. 멕시코 국민의 30%가 관련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하며 관련 산업은 2000년대 들어 주춤했지만 중국의 임금이 빠르게 오르면서 멕시코의 제조업 경쟁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포스코의 멕시코 냉연공장은 고졸 생산직 근로자에게 한국 돈 기준 60만원을 준다. 중국의 일반적인 생산직 근로자 임금과 비슷한 수준이다. LG전자는 이보다 더 낮은 25만~30만원을 지급한다.

박재룡 LG전자 레이노사 법인장은 “중국의 임금 상승률이 매년 두 자릿수에 달하는 데 반해 멕시코는 연 5% 이내”라며 “미국의 영향으로 해고 등에 대한 규제도 적은 게 멕시코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미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중국과 달리 젊은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레이노사의 평균 연령은 24세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2010년을 전후해 잇따라 멕시코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 지난해 지멘스는 인도에 있던 전력 플랜트 부품 및 조립 공정 일부를 멕시코로 옮겨 왔다. 크라이슬러는 2011년 5억달러를 들여 중국 시장을 겨냥한 ‘피아트500’ 생산라인을 멕시코에 지었다. 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로 멕시코는 2009년부터 평판TV와 양문형 냉장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국가가 됐다.

지난해 말 1억달러를 들여 세계 최대 염색약 공장을 지은 로레알의 루바 부레이 미주지역 및 멕시코 사장은 “멕시코는 44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여러 나라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1억명 이상의 인구를 갖고 있어 그 자체로도 큰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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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빈약한 인프라는 문제

멕시코 제조업의 부활은 현지 한국인들에게도 기회가 되고 있다. 저렴해진 인건비를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는 양말 제조업의 80%를 한국계 기업들이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종업원 1만명을 고용한 기업으로 성장한 제이제이의 이창희 사장은 “멕시코 임금이 중국보다 월 100달러 이상 낮아 세계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멕시코 산업 경쟁력의 한계도 있다. 가공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다보니 소재와 부품산업 등은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생산단계가 2~3단계로 상대적으로 간단한 제품은 자체 생산할 수 있겠지만 복잡한 공정은 소화하기 힘들다”며 “양말은 만들어도 그 이상의 공정이 요구되는 가방이나 모자는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6월까지 중국산 신발이 1750만켤레 수입돼 작년 동기 대비 59% 늘어나는 등 여전히 중국에 밀리고 있다.

■ 특별취재팀
브라질=남윤선 기자, 박래정 LG경제硏 수석연구위원
인도네시아=김보라 기자, 이지선 선임연구원
멕시코=노경목 기자, 김형주 연구위원
터키=주용석 차장대우, 정성태 책임연구원
인도=이정선 차장대우, 강선구 연구위원

레이노사=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