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신흥국' 인도를 가다] 공장 세울때 땅값 20%가 공무원 '뒷돈'이라니…
요즘 인도 금융가에선 정치권이 루피화 가치 하락을 암묵적으로 방치한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다가올 총선을 겨냥해 정치자금으로 활용하기 위해 해외에 쌓아둔 자금을 인도로 들여오려면 루피화 절하가 훨씬 유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언뜻 그럴 듯하게 들리는 이런 소문은 인도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극단적인 불신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인도는 행정 절차가 불투명하고 규제가 많기로 유명하다. 공무원 사회의 뒷돈 관행도 뿌리가 깊다. 인도에서 기업들이 관공서를 상대로 일처리를 할 때 해당 공무원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일컫는 ‘차이파니’ 문화가 단적인 예다. 차이파니는 원래 손님에게 대접하는 차와 물을 뜻하는 말이지만 뒷돈을 가리키는 말로도 통용된다.

공장을 세우려면 통상 땅값의 20%를 공무원에게 지급하는 방식도 관례로 굳어져 있다고 한다. 인도 중부지역에 3년 전 플라스틱 제조공장을 지은 외국계 기업 K사는 땅값의 20%인 3000만루피(약 5억원)를 인허가 관련 공무원에게 따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걷힌 뒷돈은 주정부나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이 현지 기업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2000년대 중반 일본의 한 사회복지단체가 비하르주에 학교를 세우려다가 낭패를 본 일도 부패가 만연한 인도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일화다. 당시 이 단체는 공사비 결제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점을 의식해 골조 공사를 마칠 때까지 직접 현장을 감독했다. 하지만 현장 감독을 담당했던 인원이 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학교는 뼈대만 남긴 채 그대로 공사가 중단됐다.

복잡한 세금 체계도 뒷돈을 양산하는 온상으로 꼽힌다. 지방정부에서 관할하는 판매세(sale tax)와 중앙정부 소관의 용역세(service tax)로 나뉘어 있어 세무 담당 공무원도 많고 절차도 복잡하다.

법안이 개정될 때도 인도 법무부 홈페이지 등에 ‘OO조가 개정됐습니다’라는 안내문만 나올 뿐 기업 등이 이를 확인하려면 별도의 돈을 주고 행정부서 등을 통해 관보를 구입해야 할 정도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금융사 관계자는 “관보를 사러 갔으나 물량이 떨어져 다시 인쇄물이 나올 때까지 3주간 기다려 구입했다”며 “법 집행이 불투명하고 비효율적인 인도 사회의 실정을 여실히 체험했다”며 혀를 찼다.

인도의 지하경제는 2008년 기준 정상적인 경제 규모의 절반가량에 이르는 6400억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인도의 부패지수도 해마다 악화하는 추세다. 지난해엔 178개국 가운데 94위를 기록했다.

부동산 및 제약업을 하는 인도 피라말그룹의 아제이 피라말 대표는 9일 일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기관은 너무 많고, 관료제는 너무 심하다”며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 만큼 사업을 하는 데 좀 더 분명한 룰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델리·뭄바이·푸네=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