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미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하더라도 한국은 외화유동성에 문제가 적어 금융시장 불안이 심해질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으로 전망한다.

실제로 최근 인도,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금융불안이 지속되고 있으나 한국 금융시장은 다른 신흥국과 달리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신흥국 불안이 확대되면 한국의 금융시장은 물론 수출 등 실물경제에 타격을 받을 수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리먼 사태 후 경제 기초체력 길러
전문가들은 경상수지, 외환보유액, 외채구조 등을 볼 때 한국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국제금융위기 때보다 건실한 기초체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올린 일이나 유럽 재정위기에도 자금흐름 변동이 크지 않은 점 등은 한국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졌음을 보여준다"며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학습효과를 얻은 점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달라진 점은 낮아진 단기외채 비중이다.

6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은 36.6%로, 2008년말의 74.5%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총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29.1%로 1999년(28.6%) 이후 가장 낮다.

외환보유액도 역대 최고치다.

8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천310억9천만달러로 7월의 종전 최대치(3천297억1천만달러)보다 13억8천만달러가 늘었다.

한일 통화스와프(100억달러)와 한중 통화스와프(560억달러),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등 제 2선의 외화유동성 장치도 가동 중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인 비앤피 파리바(BNP Paribas)는 최근 아시아 통화가치가 급변동하는 가운데 원화가 안정세를 보이는 것에 주목하면서 이는 외환보유액 증가와 단기외채 감소로 외화유동성이 개선됐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경상수지도 17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은 지난해 3.7%를 기록했고 올해도 2.7%(국제통화기금 예상치) 수준이 예상된다.

반면, 최근 금융불안을 겪은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2012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가 각각 5.1%, 2.8%에 달했다.

대외건전성 지표 호조에 힘입어 정부는 5일에 10억달러 상당의 외국환평형채권을 사상 최저금리로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정부 "양적완화 자금 유입규모 크지 않다"
정부는 다른 신흥국과 달리 2008년과 비교할 때 선진국 양적완화에 따른 해외자본 유입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점도 급격한 자금유출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유로 꼽고 있다.

뉴욕타임즈 등 일부 외신이 한국도 양적완화에 따른 '값싼 달러'가 과도하게 유입된 국가 중 하나라고 지적하자 기획재정부는 이를 반박하는 내용을 담은 자료를 배포했다.

기재부에 따르면 양적완화가 본격화한 2009년 이후 올해 7월까지 국내 주식시장에 들어온 외국인 순매수 금액은 45조8천억원으로, 7월말 기준 전체 시가총액(1천242조원)의 3.7%다.

채권시장에서는 2007∼2012년에 외국인 투자자 채권보유 비중이 1.9%포인트 올라가 외국에 비해 유입폭이 크지 않았다.

은행부문 외채규모도 2008년 9월말 2천195억달러에서 올해 6월에는 1천7831억달러로 줄었고 단기외채 비중도 72.6%에서 45.4%로 떨어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외국인 채권투자 비과세 폐지, 선물환 포지션 제도, 외환건전성 부담금 제도 등 거시건전성 조치에 따라 2008년 이후 외채구조가 개선됐다"고 말했다.

◇자본유출입 다른 신흥국과 차별화
한국경제의 대외건전성 지표가 비교적 양호해지면서 최근 한국의 자본유출입이 다른 신흥국과는 차별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식시장을 보면 지난달 인도, 인도네시아 등 신흥국 불안이 심화한 상황에서도 외국인의 순매수가 지속됐다.

실제로 외국인은 주식시장에서 7월에 1조3천억원을 순매수한데 이어 8월에도 1조5천억원 어치를 순매수했다.

지난달에 대만, 인도, 태국, 필리핀, 인도네이아, 베트남 등 아시아 주요 신흥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순매도한 것과는 차별화된 모습이다.

채권시장은 지난달 대규모 만기상환(3조5천억원)으로 순유출을 기록했지만 전반적으로 안정된 모습이다.

지난 5월에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출구전략 시사발언 이후 신흥국 채권투자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출되는 상황에서도 한국 채권시장은 5∼7월에 순유입을 보였다.

외국인 채권 투자액 중 장기·만기보유 성향이 강한 외국 중앙은행 보유비중이 7월말 현재 39.4%로 높아진 점도 채권시장 변동폭을 줄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정부는 다만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공식화 등 주요 글로벌 사건을 중심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고 보고 상황별 비상계획(컨틴전시 플랜)에 따라 신속히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는 항상 컨틴전시 플랜을 준비해 둬야겠지만 실제로 일이 터질 경우에 대비해 정책적 여유공간이 필요하므로 지금 당장 거시건전성 관련 추가조치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