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연금 운영 공청회 > ‘국민연금 종합운영 계획안 수립을 위한 공청회’가 2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공청회 참석자들이 제3차 재정 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위원회의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 국민연금 운영 공청회 > ‘국민연금 종합운영 계획안 수립을 위한 공청회’가 21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공청회 참석자들이 제3차 재정 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위원회의 발표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기금운용발전위원회가 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확대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면서 경제계 전반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사외이사 자격 요건 제시, 주주 소송 제기, 기업 블랙리스트 작성, 연금과 함께 투표하는 운용사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의 방안에는 주주권을 보호하겠다는 국민연금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긴 하지만, 연금의 과도한 경영 개입과 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공약 이행은 명분

국민연금, 거래 운용사 의결권까지 좌지우지…"매표행위" 비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를 강화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21일 위원회가 예상외로 강도 높은 방안을 발표한 것은 이 같은 공약의 실행 수순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동안 국민연금이 행사한 의결권의 실효성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는 연금 내부의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국민연금이 1004건의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지만 해당 안건이 부결된 것은 3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재산권 침해 소지도

가장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는 제안은 국민연금과 함께 의결권을 행사하는 자산운용사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뿐만 아니라 운용사가 자체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까지 의결권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예를 들어 A라는 자산운용사가 국민연금이 보유한 B기업 주식 100만주를 위탁 운영한다고 가정해 보자. A사는 공교롭게도 자체적으로 B사 주식 1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A사가 의결권을 행사할 때 위탁 주식 100만주는 국민연금의 뜻에 따라, 자체 보유하고 있는 100만주는 펀드매니저의 판단에 따라 각각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번 방안에 따라 자산운용사가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자사의 의결권을 동조화할 경우 결과적으로 국민연금은 200만주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시장질서를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매표 행위일 뿐 아니라 재산권 침해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인센티브를 앞세워 의결권을 사는 행위라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지금도 국민연금은 시장에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왕갑(王甲)’인데 이번 아이디어는 그야말로 내놓고 갑질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사외이사 자격 조건을 제시하도록 하겠다는 방안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날 발표자료에는 “연금이 수용할 수 있는 사외이사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돼 있다. 전삼현 숭실대 법대 교수는 “국민연금공단은 국민이 예치한 돈을 관리하는 기관인 만큼 수익률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며 “그런데 여기에 공익적인 책임을 요구해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관여한다면 관치경제만 심화되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은 어려울 듯

한편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이날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과 관련해서 두 가지 안을 내놨다. 제1안은 국민연금 고갈을 막기 위해 보험료를 인상하자는 내용이고, 제2안은 동결하자는 것이다. 발전위 내에서는 1안이 우세했다. 이들은 2017년 이전에 현재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해야 고갈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올해 기초연금 도입이 중요한 상황에서 국민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이는 보험료 인상안을 내놓는 것은 무리라는 얘기다. 또 국민연금 고갈에 대비해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일정 부분은 보험료에 의존하지만 고갈되는 시점에는 세금을 걷어 주는 부과체계로 바뀔 수 있도록 연착륙을 유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동결론자들의 주장이다.

김용준/윤정현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