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돈줄'이 마른다] 얼어붙는 '재테크 1번지'…증권사 강남지점 月 5~6곳 문닫아
19일 오후 서울 강남역 사거리 대로변에 있는 한 대형 증권사 객장. 357.71㎡(108.2평) 규모의 넓은 객장이 한산했다. 중년 여성 두 명이 케이블TV 방송을 보고 있고 환갑은 족히 넘은 듯한 남성 세 명이 무료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서울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지역이란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

강남에서도 ‘돈줄’이 마르는 조짐이 잇달아 감지되고 있다. 돈 흐름에 민감한 증권사들은 올 들어 통·폐합 지점의 절반 이상을 ‘핵심 전략지’라는 강남에서 줄였다.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 강화와 △차명계좌에 대한 증여 추정 △비과세·분리과세 상품 축소 △부자 증세를 핵심으로 한 세제 개편 등의 영향으로 자산가들이 움츠러들면서 금융 투자가 급랭기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강남에서 ‘방 빼는’ 증권사들

증권사들은 지난해부터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와 경기 성남시 분당구 등에서 집중적으로 지점을 줄였다. 올해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146건의 지점 폐쇄 신고 중 전체의 51.4%인 75곳이 서울 소재다. 강남구(18곳) 서초구(10곳) 송파구(8곳) 순으로 많았다. 폐쇄한 지점의 24.7%가 강남 3구 소재다. 성남시(6곳)도 상위권에 들었다.

SK증권은 지난해 강남 3구 일대 지점 수를 12개에서 6개로 줄였다. KTB투자증권은 역삼, 도곡 지점을 폐쇄했다. 삼성증권이 오는 9월까지 문을 닫기로 한 지점 7곳 가운데 4곳이 강남 3구에 있다.

2~3년 전만 해도 ‘강남대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증권사들은 경쟁적으로 강남 3구 점포를 늘렸다. 2010년 10대 증권사의 강남 3구 지점 예치 주식과 채권 등 자산 규모는 95조5096억원에 달했다. 서울지역 전체 자산(240조8775억원)의 39.7%가 강남에 쏠렸던 셈이다.

대형 증권사 A마케팅본부장은 “적자 점포가 늘어나면서 일단 비용부터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규 무대서 빠지는 ‘뭉칫돈’

자산가들을 상대하는 프라이빗뱅커(PB) 사이에선 ‘정규’ 금융상품 대신 ‘비정규’ 시장 쪽으로 뭉칫돈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투자자들이 발을 빼는 모습이 확연한 곳은 주식시장이다. 올 8월 유가증권시장 하루평균 거래액은 3조6153억원으로 2007년 3월(3조1491억원) 이후 6년5개월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불과 2년여 전인 2011년 4월 하루평균 거래액이 9조1990억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60.7%나 쪼그라들었다.

개인 자산가 비중이 높은 유가증권시장뿐 아니라 서민 투자자들이 많이 참여하는 코스닥시장마저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코스닥시장은 2009년 이후 꾸준히 하루평균 거래액 2조원대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지난 8일 이후 2조원 밑으로 떨어졌고, 이후 빠르게 거래액이 급감하면서 16일에는 1조5278억원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보험사와 은행 등도 비슷한 처지다. 생명보험업계 1위인 삼성생명은 경기 침체로 보험계약을 깨는 소비자가 늘면서 올 들어 설계사를 8%(3356명) 줄였다. KB 우리 신한 하나 등 4대 금융지주사의 올 상반기 순이익(2조5262억원)은 작년 동기(5조1179억원) 대비 ‘반토막’이 났다.

반면 돈의 흐름을 추적하기 힘든 비제도권 상품은 강세다. 전국 100여개 금 판매 매장을 운영하는 한국금거래소쓰리엠에 따르면 작년 4~6월에는 월별 금 판매액이 4억8000만~16억5000만원 수준이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33억~4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 금값이 폭락하는 등 ‘위험성’이 부각됐던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PB로 일하는 P씨는 “자산가들이 차명계좌를 정리하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현금 중 상당액이 금융시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활력 떨어지는 금융시장

자산가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투자 성향이 보수화하는 것도 금융투자 업계엔 고민거리다.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A증권사에 유입된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연령별로 나눠 보면 50대(30.4%)와 40대(22.3%)가 가장 많고 이어 60대(17.6%)와 70대(15.3%) 순이었다. 30대는 전체 투자금의 9.2%에 불과했다.

박경서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금융투자에 나설 만한 자산가들의 고령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자연스레 공격적인 투자보다 절세상품이나 안전자산 등 ‘지키는 투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했다.

조귀동/김동욱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