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대 아파트와 중형차, 500만원 이상 월급?’

한국의 중산층을 정의하는 통설 가운데 하나다. 중위소득 기준보다 훨씬 손에 잘 잡힌다. 하지만 통설은 통설일 뿐. 사회적으로 설득 가능한 중산층의 구체적 기준은 아직 없다. 이에 따라 정부가 ‘한국판 중산층’을 정의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6일 “중위소득 50~150%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은 국민이 체감하는 것과 동떨어져 분명히 한계가 있다”며 “한국에서 통용될 수 있는 중산층의 구체적인 개념을 만들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미국 오바마 정부가 구성한 중산층 태스크포스(TF)에서는 집과 자동차, 은퇴 소득 보장, 자녀 대학교육비 등을 중산층 조건으로 두고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고 사례를 들었다.

현재 통용되는 ‘중위소득 50~150%’는 매년 국민 소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기준이다. 이는 한 사회의 소득분배 수준을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되지만, 중산층의 실제 삶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기재부가 새로 구상하는 것은 일종의 ‘절대적 기준’이다. 사회의 허리인 중간계층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생활조건을 정의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이 있으면 내가 중산층인지 아닌지 훨씬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중산층의 절대기준은 외국에서도 점차 논의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학계 일각에서는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평균소득을 글로벌 중산층의 범위로 잡는다. 하루에 12~50달러(미국달러 구매력지수 PPP 기준)를 벌면 중산층에 해당한다. 개발도상국만 놓고 보면 평균 2달러 정도가 중산층 기준으로 쓰인다. 한국에서는 한 달에 500만원 이상 벌면 중산층이란 통설이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답한 월소득 494만원 기준과 비슷하다.

윤희숙 KDI 연구위원은 “개인의 소비 결정은 일시적인 소득변동보다 전체적인 소득 능력을 고려해 이뤄진다”며 “갚아야 할 빚, 축적된 자산, 앞으로 벌어들일 소득 등을 종합해야 중산층의 경제력 비중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평균 소득 외에 다른 전제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설문조사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은퇴 이후 소득, 부채수준, 사교육비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책 구매와 영화 관람, 여행 빈도 같은 비물질적 지표가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소득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문화소비가 중산층의 척도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국판 중산층 개념이 만들어지면 중산층 정책 타깃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라며 “올해 안에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