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직 근로자의 고령화는 힘든 작업을 해야 하는 산업현장에서 생산성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울산 온산공단의 한 공장에서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생산직 근로자의 고령화는 힘든 작업을 해야 하는 산업현장에서 생산성 하락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울산 온산공단의 한 공장에서 직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을 하고 있다. /한경DB

공업용 기계 장비를 만드는 경남 창원시의 한 대기업 공장. 올초 입사해 이 공장에서 일하는 김삼영 씨(가명·24)는 “입사해보니 같은 조 10명 가운데 20대는 두 명뿐이었다”며 “아버지뻘의 50대 선배들과 일하는 것이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주임님’과 같은 호칭보다 아저씨라고 부를 때도 있었다고 한다. 이 회사는 1998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주인이 바뀌었다. 2000년대 초 구조조정으로 근로자가 대거 빠져나간 후 인력을 제대로 뽑지 못하고 생산직 근로자들의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생산량을 유지해왔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와 심한 갈등을 겪은 탓에 시황이 나아져도 좀체 생산직 근로자를 뽑기 어려웠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현장의 ‘허리’ 역할을 하는 30대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깊어지는 공장 고령화 고민

[공장이 늙어간다] 40~50대가 공장 주력부대…"인건비 느는데 생산성 못따라"
공장이 고령화하면서 기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연령이 올라가면서 현장 활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성노조의 보호막과 연공서열제의 혜택을 받고 있는 고연령 근로자들은 젊은이들에 비해 변화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현대자동차 인사담당자는 “공장에 ‘젊은 피’가 수혈되지 않아 회사 전체가 매너리즘에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진이 혁신 차원의 공정개선을 시도할 때 장기 근속자들은 예전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강해 마찰을 빚곤 한다는 것이다. 경기 의왕시에 있는 한 기업의 기술직 과장 김모씨(51)는 “서로 나이가 많다 보니 ‘웬만하면 존중해주자’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며 “공정 개선을 위한 개선점이 보여도 이를 현장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생산성 대비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는 점도 기업에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등 대부분의 중공업 업체들의 경우 20년 근속한 생산직 근로자의 임금이 초임자의 두 배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생산성이 증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적정 인원을 새로 뽑는 게 기업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장기 근속 근로자들이 변한 사회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블록 제작 공정 등을 외주화한 A조선소는 고연령인 원청 관리자와 젊은 협력사 직원들 간 갈등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이 회사의 하청업체 직원인 김종현 씨(26)는 “관리자들이 예전 생각을 하면서 하청 직원들을 강압적으로 대하다 폭력사태로 비화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했다.

물론 숙련도가 높은 고령 근로자가 많아지면 유리한 직종도 없지 않다. 조선 산업에서 선박 블록을 최종 조립하는 마감 용접은 숙련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곡면 특수용접, 수중용접 등은 20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하다”며 “60대의 전문 용접공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근본 해결책 찾기 부심

공장 생산직 근로자들의 고령화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마땅한 대안을 찾기가 여의치 않다. 정년 연장이 거론되고 있는 데다 인력 구조조정길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젊은 피’ 수혈을 위해 무작정 사람을 뽑을 수도 없어서다. 일단 물량이 늘어나면 외주 하청으로 버텨보고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중국 혹은 동남아 등지에 공장을 설립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다. 협력업체를 교육시키는 데 따른 부담이 없지 않지만 생산직을 직접 뽑는 것보다는 유리하다는 게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창원시에 있는 한 중공업 공장의 노무담당자는 “일반관리비 등 간접비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수주 물량을 제작하려면 직접 생산보다는 하청을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베테랑 근로자의 기술노하우를 전수해야 하는 숙제는 그대로 남는다. 이를 위해 주요 대기업들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정년 예정자의 재취업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사내강사제, 선후배 워크숍, 멘토링 제도 등을 만들며 노하우 전수를 유도하는 공장도 늘어났다.

포스코는 올초 새로운 업무시스템인 ‘포스피아3.0’을 도입하면서 근로자들의 경험을 매뉴얼화하기 시작했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업들은 연령별 단절 현상이 빚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한편 멘토링 활동을 통해 노하우가 선순환하는 고리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로 전통 제조업 분야에 신규 투자가 일어나야 공장 고령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풀기 힘든 과제다. 현대중공업은 1980년대 회사 규모가 급속히 팽창하던 시기에 한 해 1000명이 넘는 정규직 근로자를 뽑은 적이 있지만 업황이 나빠진 최근엔 신규채용 인원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STX조선 등 기존 기업이 무너지고 있는 제조업 분야에서 기업에 새로 공장을 증설하고 인력을 늘리라고만 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김종만 명지대 산업경영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국내 제조업체들은 신규 채용인원을 대폭 줄여왔다”며 “조선 자동차 기계 철강 등 한국 전통 제조업들이 지속적으로 경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공장 고령화를 늦추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김대훈/배석준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