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일감 규제' 시행령 준비] 美·日·獨 다 허용하는데…한국만 제조업 파견 불허
일부 남아 있던 근로자 파견 규제조차 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폭 완화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노동계 반발 등의 이유로 파견근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경비 및 청소, 자동차운전, 배달 등 32개 업종을 제외하고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면 처벌받는다.

반면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선 제조업 사업장을 포함해 파견근로에 대한 법적 제한이 아예 없거나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제한하고 있다.

일본이 이미 한국에 비해 훨씬 단순한 파견근로 규제를 더 완화키로 한 것은 고용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고 기업의 부담을 줄여 아베 신조 총리의 성장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항만운송, 건설, 경비, 의료, 일부 법무 관련 등 파견근로를 금지한 5개 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 파견기간 제한을 없앨 계획이다. 근로자를 어떻게 고용할 것이냐에 대한 재량권을 기업에 돌려주는 게 고용 창출뿐 아니라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기존엔 파견근로를 허용하되 별도로 정한 26개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에선 36개월로 파견기간을 제한해왔다.

하지만 한국은 파견근로 규제가 가장 엄격한 국가로 통한다. 제조업 사업장에서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파견근로가 가능한 32개 업종도 사용기간이 최대 2년으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2년을 넘기기 전에 정규직으로 채용하든가 해고해야 한다. 파견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률이 거꾸로 파견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성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이유다.

엄격하면서 복잡한 파견근로 규제로 인해 불법 파견 여부를 놓고 노사 간 다툼도 빈번하다.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는 현대자동차는 생산업무를 부분적으로 하도급주는 방식으로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지만, 일부 하도급업체 근로자는 불법 파견근로의 변형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전자제품 AS를 제공하는 하도급 업체 직원들도 “사실상의 불법 파견으로 삼성전자서비스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낸 상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진국과 달리 제조업에 파견이 허용되지 않는 등 엄격한 파견근로 제한으로 인해 고용유연성 확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들은 생존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부득이 파견근로 대신 사내도급을 활용하고 있지만, 파견근로 문제와 엉키면서 수십년간 인정돼온 사내도급제도를 위태롭게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파견 허용 대상 업종을 포지티브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고, 파견기간 제한도 폐지 또는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철행 전국경제인연합회 고용·노사 팀장은 “한국의 임금근로자 중 파견근로자 비율은 0.4% 수준으로 2% 안팎인 주요국에 비해 크게 낮다”며 “파견법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저해하고 파견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정성을 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독일은 지난 10년간 파견근로자의 연평균 증가율이 각각 6%와 10.9%에 이를 만큼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7일 근로자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처벌토록 한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놨다.

전예진/양병훈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