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올해 유례없는 ‘블랙아웃’ 위기를 맞고 있다. 2010년 이후 해마다 여름과 겨울철 전력난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올해는 납품비리까지 불거지며 원자력발전소 23기 가운데 10기가 멈춰 섰기 때문이다.

전력 피크인 오는 8월 둘째 주엔 전력예비율이 바닥나 ‘블랙아웃’이 현실화되는 사상 초유의 상황까지 예견된다. 정부가 대대적인 전력 절감 운동에 나서고, 대기업은 사무실 온도를 섭씨 28도에 맞춰놓는 등 전 국민이 전기 아끼기에 동참하고 있지만 거의 매주 ‘전력 경보’가 발령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이지만 손쉽게 전기를 아끼는 방법인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보급률은 걸음마 수준인 5%(업계 추정)에 불과하다. 일본의 40%선뿐 아니라 유럽연합(EU), 미국 등의 10~20%대에도 턱없이 못 미친다.

['전력대란' LED가 답이다] 세계는 지금 LED로 '전력 다이어트'

○ LED조명 눈부신 성장

지난 4월24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 펜실베이니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북미 최대 규모의 ‘국제조명박람회(LFI) 2013’. 4만9100㎡(1만4852평) 규모의 전시 공간이 LED 빛으로 가득했다. 500여개 참여 업체는 조명의 미래로 일제히 LED를 내세웠다. 몇 년 전만 해도 백열등 형광등 등 전통 조명이 꽤 큰 공간을 차지했으나, 올해는 아예 사라져버렸다.

LED 조명이 만개하고 있다. LED의 부상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단초가 됐다. 일본뿐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등 각국이 안전성을 이유로 원전 건설을 연기하거나 포기하며 심각한 전력난이 시작됐다. 각국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보급에 나섰지만, 비용은 많이 들고 효율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해결책의 하나로 각광받고 있는게 LED 조명이다. ‘빛을 내는 반도체’ LED는 전기를 대부분 빛으로 바꿔주기 때문에 소비 전력이 백열등의 5분의 1, 형광등의 2분의 1에 불과하다. 60W 백열등을 켜려면 60W 전기가 필요하지만, 같은 밝기의 LED 전구(850루멘=루멘은 LED 밝기의 단위)는 8W면 된다. 수명도 2만~5만 시간에 달해 10년은 너끈히 쓸 수 있다. 수은 납 등 환경오염 우려도 없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LED 보급을 위해 백열전구 규제에 나섰다. 일본은 작년 1월부터 백열등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EU는 지난 9월부터 백열전구 생산·수입·판매를 막았다. 미국은 2012~2014년 단계적으로 백열등을 퇴출시킨다.

선진국뿐 아니다. 중국 정부도 작년 100W 이상 백열등에 규제를 시작했고, 내년에는 60W 이상, 2016년에는 15W 이상 백열등의 수입·판매를 막는다. 2010년 백열전구 공공구매를 중단한 러시아도 내년부터 전면 금지에 나선다.

이에 따라 연간 120조원 규모인 세계 조명 시장에서 LED의 폭발적 약진이 예상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작년 조명기기의 5%에 불과했던 LED는 2016년 26%를 차지할 전망이다. LED칩 기준으로는 지난해 167억2600만개에서 2016년 904억7100만개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4년 만에 5.5배 성장하는 것이다.

○‘페이백 타임’ 1년 이내로

일본 도쿄 시노노메에 있는 대형할인점인 이온 쇼핑센터. 전 층이 모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쓰고 있다.  
일본 도쿄 시노노메에 있는 대형할인점인 이온 쇼핑센터. 전 층이 모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쓰고 있다.  
LED는 몇 년 전만 해도 ‘그림의 떡’이었다. 2010년 60W 백열전구를 대체하는 8W LED 전구값은 하나에 10만원이나 했다. 이 같은 값은 올해 초 1만원대 초중반으로 떨어졌고, 최근 오스람이 8900원짜리 제품을 내놓으며 1만원 선이 깨졌다. 최근 2년 사이에 반토막이 됐다. LG전자 관계자는 “올해 말, 내년 초면 5000원 선에 근접할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라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서 LED 확산 속도가 빨라진 데는 값이 떨어진 게 큰 역할을 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2008년 파나소닉이 내놓은 LED전구 가격은 9800엔으로 당시 백열전구(100엔)의 거의 100배였다. 이 같은 가격은 2009년 5000엔 아래로 떨어졌고, 2010년 2980엔짜리 제품이 나왔다. 그게 본격적인 보급의 시작이었다.

일본 벤처 조명회사인 아이리스오야마의 이시다 다카모리 본부장은 “통상 백열전구 대신 LED를 사용하면 연간 약 3000엔의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다”며 “LED전구 가격이 2000엔대에 진입하자 ‘1년만 쓰면 본전 뽑는다’는 선전 문구가 기업과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이후 정부가 보급정책을 추진하자 현재 일본은 주요 관청은 물론이고 데이고쿠호텔 등 고급 상업시설도 대부분 LED 조명을 쓴다. 밤거리도 LED가 지킨다. 도쿄 가쓰시카구는 2만5500개의 가로등 중 절반 이상인 1만4000개를 내년 3월 말까지 LED로 바꾸고 있다.

지난 4월 새로 개장한 도쿄 긴자의 가부키자(歌舞伎座·가부키 공연장)도 조명을 LED로 뜯어고쳤고, 후쿠오카시는 지역 명소인 ‘후쿠오카타워’에 LED 조명을 달고 있다. 나라현 가쓰라기의 유명 사찰인 ‘다이마’마저도 LED를 사용 중이다. 기업들 가운데서는 하루종일 조명을 켜놓아야 하는 유통업계가 전환속도가 빠르다. 일본 편의점의 70%, 슈퍼마켓의 60%가 LED를 쓰고 있다.

LED 값이 떨어지자 백열등에 비해 비싼 LED 전구를 산 소비자가 전기료, 수명 등을 고려해 실제 돈을 벌기 시작하는 시점인 ‘페이백 타임(Payback Time)’도 앞당겨졌다. 백열등의 경우 60W 전구가 1000원 안팎, LED 전구는 8900원으로 9배가 비싸지만 수명은 기존 백열등은 1000시간, LED 등은 2만시간이나 된다. 거기에 소비전력은 15~20% 수준이다. 업계는 1년도 안돼 값을 뽑는다고 분석한다. 형광등은 2년가량 걸린다. 이준희 한맥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형광등을 많이 써 LED 보급이 상대적으로 느리다”면서 “형광등 대체 LED 전구값도 떨어지고 있어 정부의 보급 지원만 확대되면 LED가 급속히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석 기자/도쿄=안재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