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도쿄증권거래소와 중소형 증권사 본점이 밀집해 있는 도쿄 니혼바시역 인근 가부토초. 증권사 1층에 자리 잡은 영업부의 유리벽에는 ‘매월결산형’ ‘외국주식신탁’ 등 펀드(투자신탁)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도쿄대 박사과정 중인 김지영 씨와 동행해 그중 한 곳인 S증권사 지점을 방문했다. 김씨가 “여윳돈을 투자하고 싶다”고 하자 한 직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안내서를 꺼내 보였다. 일본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 2종과 북미에너지펀드, 미국주식형펀드를 주저함 없이 추천했다. 4종 모두 한국에선 ‘월지급식펀드’로 알려져 있는 ‘매월결산형’이었다. 일본의 월지급식펀드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월지급식펀드 시장 36조엔

실제로 월지급식펀드 광고는 일본국채(JGB) 광고를 대신해 마루노우치, 긴자 등 도쿄 번화가의 증권·은행 지점 출입문을 도배하고 있다. 월지급식펀드는 투자자가 돈을 맡겨 놓고 매달(1년에 두 번 정도로 조정 가능) 사전에 정해진 금액을 꼬박꼬박 받는 상품이다. 분배금보다 운용수익이 크면 원금이 줄지 않지만 운용수익이 적으면 원금에서 돈이 나간다.

일본에 월지급식펀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7년이다. 당시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가 1%대로 내려앉고 주식시장은 하락을 거듭했다. 일본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이 보장되는 미국 하이일드채권이나 선진국 국채 등 해외채권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노년층 투자자들은 매달 연금처럼 분배금이 나온다는 사실에 이끌렸다. 1998년 선보인 일본 고쿠사이투신의 해외채권형 월지급식펀드인 ‘글로벌소버린오픈펀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2년부터 순자산총액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월지급식 펀드의 인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일본투자신탁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월지급식펀드의 순자산총액은 36조4293억엔으로, 전체 공모 주식형펀드 순자산총액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노년층은 매월 고정수입 원해

일본이 월지급식펀드 천국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인구 고령화다. 작년 말 기준 일본 가계 금융자산(1546조엔)의 55%는 현금과 예금(사실상 제로금리)에, 28%는 연금과 보험에 집중돼 있다.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가 일본 총무성의 ‘2009년 전국소비실태조사’를 기초로 추산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가계저축의 58%, 유가증권의 70%를 60세 이상 노년층이 보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비붐 세대(1947~1949년생)의 은퇴가 본격화하자 글로벌 하이일드채권이나 이머징마켓 국채, 해외주식, 일본주식 등에 투자해 연 5% 이상의 수익을 추구하는 월지급식펀드가 인기몰이를 했다.

후지와라 노부유키 일본 도이치자산운용 금융상품담당 전략가는 “연금이 짝수달에 지급되기 때문에 1, 3, 5월 등 홀수달에 배당되는 상품이 인기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작년 3월 이후 지난 6월까지 16개월 연속해서 월지급식펀드에는 자금이 순유입됐다.

○투자 통화 선택해 초과수익 노려

한국에 ‘더블데커펀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통화선택형’ 상품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09년 노무라자산운용이 처음 선보인 통화선택형 상품은 2012년 말 기준 순자산총액이 9조9409억엔에 이른다.

일본주식 또는 해외채권 등에 투자하는데, 투자 통화를 선택해 환차익을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상품이다. 지난 9일 기준 운용자금이 7710억엔에 달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은 ‘노무라일본브랜드투신’ 펀드 시리즈의 경우 투자 통화가 엔화인 상품 규모는 165억엔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호주달러, 브라질 헤알화, 터키 리라로 투자하는 상품이다.

1년 수익률은 호주달러로 투자하는 상품(59%)이나 헤알화 투자상품(61%)이 엔화로 투자하는 상품(39%)보다 20%포인트 이상 높다. 일본 주가 상승에 엔화 약세까지 겹쳐 다른 통화로 투자한 상품에서 환차익이 났기 때문이다. 후사 하지메 노무라자산운용 국제업무부 선임부장은 “2009년부터 현재까지 하이일드채권 등에 투자하면서 초과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으로 통화선택형 펀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도쿄=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 글 싣는 순서

① 대체투자·월지급식 눈돌린 美·日
② 홍콩은 지금 채권형 펀드 ‘붐’
③ 주식투자형 연금의 나라 호주
④ 중위험·중수익 열풍 부는 독일
⑤ ‘우리는 어떻게’… 전문가 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