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Fed 의장, 또 애매한 메시지 "양적완화 연내 축소…필요하면 추가 부양"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사진)이 올 하반기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한 뒤 내년 중반에 이를 중단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세금 부담 확대와 시퀘스터(자동 재정지출 삭감), 해외 경기 둔화 가능성 등을 미국 경제 성장의 위협 요인으로 꼽으면서 필요할 경우 양적완화 규모를 확대하는 등 추가 부양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했다.

버냉키 의장은 17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서 “Fed는 850억달러에 달하는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올 하반기부터 줄이기 시작해 내년 중반께 이를 중단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또 실업률이 7%까지 내려가면 자산 매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6월 중순 밝힌 ‘자산 매입 가이던스’를 재확인한 것이다. 시장은 일단 양적완화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다우존스와 유럽 증시는 소폭 상승세를 보였다. 시장은 이제 이틀간 진행될 청문회의 질의응답 내용에 주목하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투자자들이 자신과 다른 Fed 위원들이 지난 수 주 동안 시장에 보내려던 메시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면서 “변동성이 잦아들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출구전략에 무게

그는 “Fed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은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의 전개에 달려 있고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만약 경제 여건이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될 경우 더 일찍 축소할 수 있지만 노동시장 전망이 좋지 않거나 인플레이션이 Fed 목표치인 2%까지 회복되지 않으면 자산 매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금리 상승에도 불구하고 강한 주택시장 회복 등으로 경제 회복이 완만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며 “경제를 위협하는 리스크도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그러나 “고용 환경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고 올해부터 더 높아진 세금과 정부 재정지출 삭감 등으로 미국 경제성장을 부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청문회 질의응답에서 실업률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자연스러운 실업률은 5.6%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 7.6%의 실업률은 여전히 구조적인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또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중국이 수출을 높이기 위해 수년간 위안화 환율을 더 낮게 관리해왔다”며 “환율을 직접 조작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부양정책에 대해서는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출구전략 시기 네 가지 변수

전문가들은 Fed가 출구전략 시기를 고려하는 변수로 △신규고용 △실업률 △인플레이션 △재정 혼란 등 네 가지를 꼽고 있다. 지난 9개월 동안 비농업 부문의 신규고용이 매달 20만명을 웃돌았지만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지가 관건이다. Fed는 그동안 ‘실업률 7%에서 채권 매입 프로그램 중단, 6.5%에선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 그런데 버냉키 의장은 6월 기자회견에서 구직 포기자 증가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실업률이 고용시장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업률 수치(7%, 6.5%)가 더 이상 가이드라인으로서 의미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 지수는 전년 대비 1.8% 올랐다. Fed의 목표치 2%에 근접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계절적 요인을 빼면 1%대 초반이라고 분석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물가상승률이 2%에 근접하지 않는 한 양적완화는 좀 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변수다. 2014회계연도가 시작되는 10월부터 연방정부의 자동 예산삭감(시퀘스터) 조치가 예정돼 있고, 정부의 법정 부채한도 증액 협상이 실패하면 정부 폐쇄 위기 등 시장 혼란이 불가피하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김보라 기자 jang@hankyung.com